미국이 이란을 침공했다. 2026년 2월 28일에 일어난 일이다.
명분은 단순했다. 이란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제정일치(祭政一致) 독재정권이 인권을 유린하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을 막고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류가 지구에 발을 디딘 이래 문자가 발명되기 전의 머나먼 옛날부터 최첨단 기술이 인류의 생활에 녹아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인류는 전쟁을 멈춰본 적이 없다. 인간의 본성은 욕망이며, 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에 휘둘린 결과가 전쟁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발현되었을 뿐이다. 두번의 세계대전과 수없이 많은 식민통치와 그 이전의 시대에 벌어졌던 유명한 전쟁부터 이름 모를 전투까지, 인간은 끝없이 피를 흘려왔다.
더이상 이 고통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말자고 폐허 속 잔해를 딛고 일어난 이들이 UN을 창설하였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현대문명의 제국이 내민 연판장에 너도 나도 다함께 서명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긴 시간동안 유전자에 새겨져온 본능과 전쟁의 공포를 잊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 조약 기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Warsaw Pact)와 같이 일부 지역에서는 각자의 안위를 위해 창설되었던 것이다. 훗날 소련은 자신들의 동맹국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공포정치라는 전략을 채택했고, 동맹국들을 겁주고 침략하는 것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그들을 공포로서 지배하려 하였다. 하지만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속한 레드팀의 국가들이 하나 둘 씩 탈퇴하고 나토에 가입하면서 결국 바르샤바 조약 기구는 세를 잃고 유명무실한 껍데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1991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전쟁이라는 소모전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그들의 저력을 문명의 발전에 쏟아부었고 황금기를 이루었다. 쏟아져나오는 20세기 후반의 다양한 분야 속 성과와 결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협이 사라지자 인류는 욕망이라는 본능이 이끄는대로 충실하게 탑을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한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생각한 사유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 어떤 전쟁과 폭력을 미화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없으며, 편향된 시선으로 본질을 왜곡하려는 시도조차 아닌 것을 미리 명시하고 지나가겠다. 이는 그저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가 허락한 마지막 시대에 태어나 세상에 내던져진 한 인간이 떠나간 프네우마를 그리워하며 남겨진 로고스(Logos / λόγος)로서 종언(終焉, Demise)이 내려진 세계라는 조각난 우시아(Ousia / οὐσία)의 파편과 잔해를 이해해보려는 일기에 지나지 않음이다.
이렇게 말하였음에도 나의 일기를 두고 누군가를 옹호하고,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저열함이라 오해하는 것은 그의 문해력이 심각하고 처참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이 세계는 20세기를 끝으로 프네우마가 사라졌다는 나의 가설을 견고하게 만들어줄 증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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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 아메리카(Strong America). 과거 20세기의 패권을 거머쥔 제국의 위상을 나타내기에 이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 미국은 전세계의 경찰이자 맹주(盟主)로서 지구 제국의 황제국(皇帝國)이 되었다. 유럽을 필두로 미국의 동맹국들은 그 제국의 제후국(諸侯國)으로서 미국의 통치를 보좌하였다. 미국은 지구 각지의 요충지에 군대를 파견해 부대를 건설했고 바다에 떠다니는 요새인 항공모함을 띄웠으며 하늘의 제공권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이미 소련과의 우주개척전쟁의 전초전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지구 밖 우주 공간에조차 미국이 쏘아올린 인공위성과 많은 인공체들이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스트롱 아메리카는 2001년 9월 11일 화요일의 오전, 끔찍한 테러로 인해 심하게 타격을 받았다. 그 사건이 있기 1달 전 미국을 방문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뉴욕 시내를 구경하던 나는 쌍둥이 빌딩을 기억한다. 그 빌딩이 9.11 테러로 인해 형체도 없이, 수없이 많은 시민의 목숨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전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여긴 사막신의 광신도들이 감히 제국의 심장에 칼을 겨누고 휘두른 것이였다. 아직도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대통령이 학교의 수업에 참관하다 급히 보좌관의 보고를 전해듣고 표정이 굳어지며 터져나오는 분노를 아이들 앞에서 감추기 위해 삭이는 그 모습이 기억난다. 전세계의 모든 비행기들은 미국 상공에서 사라져 침묵했으며 막나가는 그 북한조차 먼저 미국에게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라며 꼬리를 말고 깨갱대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였다.
미국의 분노를 건드린 대가는 처참했다. 미국은 폐허 속 잔해와 희생자들의 피, 비행기 속에서 테러리스트(Terrorist)들에게 저항하며 죽어간 용기있는 시민들의 땀, 남겨진 유족들의 눈물을 잊지 않았다. 전세계가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을 품었음에도 그들은 10년의 시간을 들여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그 저열하기 짝이 없는 사막신의 노예를 추적해 그의 일가 모두를 지구상에서 몰살해버렸다. 미국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위대함은 바로 이 곳에 있었다. 분노해야할 순간 분노하고, 관용을 보여야할 순간에 관용을 보였던 미국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은 약해졌다. 그것은 외부의 침략이나 타격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의 약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내부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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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미국의 스트롱파워를 스스로 꺾어버린 대통령이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뉴스나 인터넷 사이트만 찾아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테니 생략하겠다. 그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정치를 시도했으며, 그가 가진 속성을 이용할 줄 아는 자였다. 그는 미국인이 가진 노예제도와 인권유린 그리고 인종차별의 죄책감을 철저히 자신의 무기로 쓸 수 있었다.
여기서 한번 말하고 넘어가겠는데,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의도가 선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악하다면 그 의도는 선한 것이 될 수 없다. 그저 무능에 지나지 않는다. 선함이 모든것의 면죄부(免罪符)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PC주의를 지지했다. 미국의 몰락 그 전초전이자 기점, 시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PC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없이 많이 했으니까 귀찮으니 생략하겠다. 아래의 글들에 적어놓았다.
◆ 팍스 아메리카나의 성경, PC주의 https://shearestis.tistory.com/101
팍스 아메리카나의 성경, PC주의
팍스 로마나를 붕괴시킨 트리거는 로마인의 타락이였다.그들은 각종 신비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졌고, 더불어 그 끝에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LGBTQ까지 향락주의의 일부로 귀족과 지배계급들의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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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에 만들어진 세속적 종교 https://shearestis.tistory.com/112
21세기에 만들어진 세속적 종교
20세기까지는 세상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그 시절에는 비록 부족하고, 없고, 많이 미숙하고 곤란한 시대였지만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 내 이웃과 친구, 동료와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이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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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2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세상에는 참 듣기 좋은 말이 많다. “너는 소중해”, “네 기분이 곧 법이다” 와 같이 인간의 로고스(Logos / λόγος)를 삭제한 채 감성(Pathos,πάθος) 만을 자극하는 비논리적인 포장지로 둘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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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https://shearestis.tistory.com/123
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농담으로라도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아무튼 해줘.”“몰라, 그냥 해줘”“그냥 줘.”“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줘.”“아무 노력 없이 갖고싶다.”“노력 없이 이기고싶다.” 듣기만 해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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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고싶다고 모두 가질 순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5
갖고싶다고 모두 가질 순 없다
TV 속에 종종 나오는 비혼모가 있다.정자 기증을 통해 낳은 아이를 데리고 육아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데, 아이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엄마의 뱃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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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등의 가치를 왜곡하는 질투 https://shearestis.tistory.com/126
평등의 가치를 왜곡하는 질투
세상에는 다양한 재능이 있다. 누군가는 글을 잘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며, 누군가는 머리가 뛰어나고, 누군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뛰어나며, 누군가는 음악에 재능을 갖고 있다.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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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함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9
결함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καλοκαγαθία)그리스어(헬라어)로 아름다움(Kalon, καλός)과 선함, 탁월함(Agathon, ἀγαθός)를 합쳐 만든 단어로, 육체적 아름다움(외면)과 정신적 덕(내면)이 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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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빵에는 죄가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30
그 빵에는 죄가 없다
SNS상에서 어떤 사람이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논란이 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SNS에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글의 게시자는 그들의 선전용(宣傳, Propaganda) 우상(偶像, Idol)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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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심연은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34
결국 심연은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오늘도 즐겁게 새로운 게임 정보가 있나 공식 계정을 보기 위해 SNS에 로그인을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의 특이한 친구는 몇년 전 어느 순간부터 정치활동과 인권운동 등에 푹 빠져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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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속에서부터 철저히 무너져갔다. 과거 수없이 많은 갈등과 죄 속에서도 하나의 목표를 갖고 다함께 뭉치고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은 서로를 향해 라벨(Label)을 붙이고 갈라져 누가 더 선한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갖고 싸워댔다. 개인의 서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라보며 평가하고 정의내리는 대신, 그저 남이 정해준 수백개의 라벨을 들고 누군가를 성향과 속성으로만 판단하며 틀 안에 가두고 정의내렸다. 사회와 문명의 생물학적이고 형이하학의 절대적 상수(常數, Constant)를 두고 감히 오만하게 인간이 세상의 이치와 섭리를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 상수를 변수(變數, Variable)로 취급하였다.
미국은 내부에서부터 그렇게 썩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조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가 썩게 만든 미국의 기둥을 걷어차 무너뜨리고 말았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야할 남자와 여자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눠져 한쪽을 일방적으로 난도질하고, 난도질 당하는 것을 그저 감내하는 것이 미덕이라 칭송받았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부당하고 무엇이 옳은지를 논하는 것은 철저히 죄악시 되었다. 기울었던 저울을 바로잡는 것은 나머지 한쪽에 무게를 추가하는 것이지, 반대쪽이 기울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피해자 프레임에 갇혀 긴 역사의 시간동안 천대받아온 여성에게 권력을 주고 남성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섭리가 안배한 암수(자웅:雌雄)를 부정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와 성별을 부정하였다. 그와 동시에 서로 맞물릴 수 없으며 맞물려서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라 포장하며 그 역겨운 것을 다양성이라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인 성기를 훼손하는 것을 정당화 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지개의 색 뿐 아니라 다양한 색의 조합, 과거의 유산들과 예술의 궤적이 모욕당했으며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마저 뒤흔들었던 것이다.
누구의 피부색이 더 짙은가를 따지며 짙은 색에 선함과 약자의 라벨을 붙이던 이들은 정작 제대로된 가정을 이루기는 커녕 쾌락과 욕망에만 몸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만 하면 그만인 하루살이처럼 사회의 규범을 무시했다. 국가에서 그들에게 내려주는 지원금에 의지하면서도 국가 자체를 부정하였고, 사회의 법망에서 보호를 받으면서도 정작 그들은 BLM을 주장하며 상점의 유리를 깨고 진열대의 물건을 약탈하였다. 대체 파괴와 약탈의 어디가 인권의 소중함을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스스로 사람들이, 사회가 그들을 차별할 이유를 만들면서 자신들을 차별하지 말라며 외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무너졌다. 미국인들은 처참히 무너진 제국의 기둥 파편을 들고 추락한 제국의 위상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제국의 붕괴를 눈치챈 소위 레드팀들이 하나 둘 고개를 빼꼼 들어올리고 패권에 도전했다. 흑묘백묘론을 논하며 시장을 개방했던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패권에 앞으로 100년은 도전하지 말며 힘을 비축하라고. 하지만 흔들린 제국의 모습에 시진핑은 신이 나서 덩샤오핑의 현명한 조언을 무시하고 성급히 칼을 들고 일어나 미국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러시아 역시 소련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저녁은 키이우(Kyiv, Київ)에서 먹겠다는 푸틴 대통령은 몇년째 그 이야기를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짓밟고 있었다.
미국의 강인한 군사력이 물러간 자리에 사막신을 모시는 사막민족들은 또다시 자기들끼리, 자신의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라는 그들의 교리에 따라 세계를 향해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세계가 비난하던 미국의 패권주의는 전쟁을 억제하고 있었음을 정녕 몰랐던 것인가? 평화는 강한 힘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역사 속에서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었던 미국의 강인함을 그저 악으로 규정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중동을 내려놓은 결과, 중동은 끝없이 많은 테러단체와 군벌로 쪼개져 서로를 난도질하고 바깥세상에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서방의 기술로 만든 총을 겨누고 미사일을 날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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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트럼프(Donald John Trump)를 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미국은 소프트 파워를 외치며 안에서 썩어들어 무너진 제국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들의 가정이 해체되고 자녀의 성기를 훼손당하며 사회의 상수가 변수가 되는 것에 그들의 삶이 위협당하는 것을 경험했다.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트럼프를 택한 미국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저 선한 의도와 문구를 앞세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이들로 인해 무너진 미국을 다시 안전한 낙원으로 되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을 진보와 보수, 선과 악, 좌우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복잡하고 다면적인 국제정세와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다양한 요소를 압착해서 단면으로만 바라보겠다는 심각한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애초에 인류가 전쟁을 하고 서로 싸우고 기만한 역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전제를 간과한 멍청이들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고 진보를 그저 선으로 규정하며 보수를 악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2026년, 트럼프는 왜 이란을 침공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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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과거 한번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적이 있다. 그는 재선을 꿈꿨으나 실패했고, 재도전 끝에 그는 한번 더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한 것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가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때 들고 나온 말이다. 미국인들은 과거 강인하고 견고했던, 절제 속 질서가 수호하던 미국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다. 그에 따라 많은 이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잘나가던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썩어 문드러진 폐허에 주저앉아 있는데 어찌 비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를 되찾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망이다.
트럼프는 영리하다. 자신이 가진 패를 알고 무엇이 불리하고 무엇이 유리한지 기가막히게 알고 있으며, 상황에 걸맞는 판단력을 보이곤 했다. 심지어 임기응변에도 능한 그는 자신에게 닥친 화를 운으로 바꾸는 재능마저 갖고 있었다. 그의 토론이나 연설을 보고있노라면 그의 인간성에 상관없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 그의 처세와 유머는 바다에 잠긴 빙산의 아래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를 좋게 보아서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지, 그가 가진 한계를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알고도 묵인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트럼프는 이제 곧 80이 된다. 인간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그가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의 정점에 있다한들 그가 불사의 몸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늙었으며, 수명을 100살까지라고 최대한 늘려 계산해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20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몇번의 결혼 속에 얻은 자식들과 그의 손주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권력욕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늙은이의 노욕이였던 것일까? 그리 단편적으로 생각하기만 할 문제는 아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한가지 상수가 있다.
배런 트럼프(Barron William Trump). 도널드 트럼프가 마지막으로 결혼한 멜라니아와의 사이에서 본 늦둥이 아들이다. 아버지가 60에 낳은 아들인 그는 이복형제자매들과 나란히 두었을 때 형제이기보다는 자식뻘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이 차이난다. 오히려 그들의 자녀이자 트럼프의 손주들과 또래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에게 있어 배런은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가장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닮은 모습을 한 막내아들,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혼자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형제간의 우애보다는 홀로 자란 모습, 너무 늦은 나이에 낳아 다른 자식들과 다르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이른 나이에 두고 가야할 운명 속에 트럼프는 어쩌면 여러가지 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의 근간은 사랑이다. 섭리의 근간 역시 사랑이다. 그러니 이 공식에 따라 트럼프는 배런에 대한 사랑에 조급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두고가야 하는 운명 속에 썩어 문드러진 미국과 미래의 폐허가 트럼프, 그에게는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서는 귀찮으니 다음 문서로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인류 멸망의 6대 형이하학적 상수 https://shearestis.tistory.com/100
인류 멸망의 6대 형이하학적 상수
• 기술 (AI/로보틱스): 인간의 노동 및 존재 가치의 물리적 상실.• 환경 (지구온난화): 3차원 생존 기반인 지구 환경의 하드웨어적 파괴.• 생물 (이디오크러시): 고지능 개체의 비출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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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재앙과 붕괴의 미래 속에 배런을 두고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자식들과 다르게 더 많이 사랑해주지도 못했음에도 더 오랜시간을 지옥에서 살아야하는 것이 보이는 자식을 말이다. 그는 미국에 다시 황금의 시대를 되찾아주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어린 자식이 살아갈 세상이 안전하기를 바란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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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그는 신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다.
대의가 있던 없던, 어떤 의도를 갖고있던 그 속내를 알 길은 없다. 그저 추측할 뿐. 그가 어떤 판을 짜고 어떤 패를 들고 있으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입과 그의 선택을 두고 생각하면 어느정도는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의 정체성을 걷어내고 자국우선주의를 들고 나왔다.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기만 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군사비용에 세금을 투자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 드는 동맹국들의 나태함을 지적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주둔비용을 청구했다. 미국이 주는 것을 받은 이들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이상론자들에게 현실을 들고 와 그들의 세상을 깨부수고 실리를 추구하였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악마의 껍데기를 벗겨내 세상에 벌거벗겨 전시하고 도륙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진 것도 아니며 그의 선택이 항상 옳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선과 악으로 양분해서 판단할 수는 없기에 나는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항상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에 대한 판단을 계속해서 유보하고 있었다.
그가 과연 전쟁광일까? 그는 전쟁을 사랑할까? 인종차별주의자일까? 악한 보수주의자일까?
미국의 경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위에 평화롭게 굴러간다. 미국의 뛰어난 군사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무기들이 미국의 평화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현대에 있어 분쟁이 있는 곳에 늘 미국은 얼굴을 들이밀고는 하였다. 그럼에도 미국은 역대 지구의 지배자였던 패권국들과 다르게 선한 척을 하려 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표면적인 대의명분이라도 열심히 챙겼으니 역대 황제국들 중에서 가장 평화롭고 너그러운, 온화한 미소를 지은 황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이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면 역사상 가장 강인했던 제국이 주변국과 식민지에게 무엇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찾아서 읽어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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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은 그저 이란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것이 아니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이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자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임과 동시에 오일파워를 이용한 세계경제 장악이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방장사기맵 미국은 자원이 넘쳐났고, 지질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국의 땅에 숨겨진 자원은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셰일 역시 그 발견의 일부이고, 미국은 더이상 중동의 산유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사막신은 또다시 망신을 당한 것이다.
셰일이 제값을 받으려면 유가가 높아야한다. 채굴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중동의 혼란을 원한다. 중동이 전란에 휩쌓이면 당연히 유가가 올라갈 것이고, 그에 따라 셰일은 채굴비용을 포함해도 흑자를 볼 수 있는,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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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연판장에 동맹국으로서 이름을 올렸던 국가들은 미국의 방패 뒤에 숨어 평화로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누렸다. 미국이 주는 평화에 취한 유럽은 강인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다른곳에 투자하였고, 그들은 PC사상에 철저히 붕괴했다. 다시 우파가 득세하였다 해도 가짜 로고스로 무장한 무지몽매한 멍청이들과 그들이 빗장을 풀고 제 집 안방으로 들여보낸 침입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에게 식민지배 시절의 업보를 돌려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결하고 미국은 경박하다는 논리에 빠져있다. 역사의 길이에 따라 미국을 깔보았으며 그와 동시에 미국에게 의존하며 미국을 깎아내리곤 했다. 유럽은 나약한 뒷방 노인네가 되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동맹국들의 군함을 요청했다. 연판장에 서명한 국가들은 하나 둘 각자의 이유를 대고 빠져나갔다. 그 어떤 국가도 군함을 보내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말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군함을 보내 괜히 이란과 외교관계가 틀어지고 전쟁에 휩쌓이게 되면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지지와 표를 잃게 될 것이며 민생은 혼란에 휩싸이게 될테니 말이다. 각국의 언론은 미국의 부름을 거절한 자국의 지도자와 그들의 선택을 두고 현명한 판단,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선함이라 칭송했다.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음에 안도한 국민은 트럼프를 전쟁광, 미국을 전쟁에 미친 악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미국의 방패 뒤에 숨어서 평화를 누려온 많은 국가와 지구인들이 그저 미국을 악이라 몰아세우며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는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선택은 역설적으로 평화를 깨뜨린 선택이 되었다. 경제는 갈등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돈은 남아주지 않는다. 미국이 만든 평화라는 공유지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평화를 누리고 싶지만 그 누구도 비용을 지불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감정적이고 선한 가치를 걷어내고 논리로만 두고 설명해보겠다. 미국의 부름에 답하지 않은 동맹국의 외면은 결국 장기적인 중동의 혼란과 긴장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비록 지탄받을 일일지 몰라도 동맹국들이 옛 약속에 따라 군대와 함선을 파견하고 다같이 호르무즈의 혼란을 제압해냈다면 지금쯤 유가는 하늘을 향해 치솟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란인들이 미국의 침공을 두고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독재자 하메네이(Ali Khamenei)를 죽이고 자유를 되찾아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며 사막신이 뒤집어씌운 히잡을 찢고 담뱃불에 독재자의 사진을 지져가며 환호했다. 한쪽은 하메네이의 부역자들과 그들에 의해 이득을 취하던 이들이 피해자의 라벨을 스스로에게 붙이며 미국을 비난하였다. 미사일을 맞은 이란조차 어느 한쪽으로 뭉치지 않고 각자의 판단으로 미국을 바라보았으며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던 것이다. 한국의 뉴스에서는 이란을 피해자, 미국을 침략국으로 보는 프레임에 맞춘 보도만이 쏟아지기에 궁금해서 일부러 외신을 찾아보았다. 미국 현지와 이란 현지의 반응, 각 국가의 반응은 정말 천차만별이였다. 우리가 TV에서, 신문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접할 수 있는 소식은 정말 편향된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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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관찰하고 판단함에 있어 이분법적인 사고는 적합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고 다면적인 현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은 바둑돌과 같이 흑돌과 백돌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고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승부처럼 담백하고 정당하기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오히려 젠가(Jenga)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고,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며 임기응변으로 덕지덕지 기워낸 누더기같은 세계가 지금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현대적인 가치는 어쩌면 단지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가 가져다준 잉여자원과 에너지의 부산물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생각하는 법을 빼앗았다. 우매해진 군중만큼 권력자들에게 다루기 쉬운 노예가 없다. 스스로 사유(思惟)하는 지성인은 컨트롤하기 힘들다. 그러니 권력자 혹은 권력을 갖고싶은 자는 민중에게 다가가 그들이 듣고싶은 말을 들려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며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라며 대신 합리화해준다. 약자에게 피해자이자 선인의 프레임을 씌워주고 그와 동시에 강자에게 가해자이자 악자의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원망하는 것을 정당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더 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이들은 사회가 어떻게 무너지던 상관없이 자신에게 들어온 권력을 누리느라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방치한다. 세계가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그가 얻은 혼돈과 파괴의 권력은 더 힘을 얻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갈려나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권력을 모아준 그의 홍위병, 앞잡이들이다.
앞잡이들은 자신이 권력자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에게 부역하여 위안을 얻고 그를 위해 무급노동을 하며 세상의 이치를 부정하고 섭리를 모욕하여 권력자에게 권력을 벌어다준다. 그들은 지성을 거부하며 이 땅에 반지성주의를 선함으로 포장해 갖다 박았다. 그리고 지성을 갖고 스스로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을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다양성’이라는 모순으로 무참히 두드려패 꺾어버리려 한다. 지성은 결코 꺾이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무엇인가가 섭리를 거스르려 하면 늦던 빠르던 어떻게든 세상의 이치는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작동한다. 선한 의도를 뒤집어쓴 PC주의는 반지성주의 그 자체이다. 지성이라는 섭리를 비틀려 하였기에 이치가 그것을 단죄하고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려 하려는 모습이 바로 지금의 세상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 문명은 붕괴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 무너진 자리에 암흑의 시간이 찾아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싹트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는 끝났고, 그 붕괴 속에서 트럼프는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안전하게 무너지는 법을 찾고 있는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저지른 수없이 많은 실수와 악행은 그 시행착오의 일부일 것이다.
질서와 절제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기둥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섭리 그 자체일 것이다. 혼란과 방종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무너진 곳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질서와 절제가 당연한 것이라 여겨 그것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감히 무너뜨리고자 한 이들은 붕괴가 가져온 무질서에 가장 먼저 처참히 스러질 것이다. 그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이고 섭리이자 이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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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로고스는 종언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조각난 우시아의 파편만이 남았다. 프네우마는 이미 예전이 우리를 떠나 잠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 다시 빛을 품기 위해.
내가 살아생전에 일어날지 의문이였던 세계3차대전이 일어났다고 봐도 될 것이다. 세계는 우크라이나 침략, 가자지구 침공 등의 사건 속에서 외면과 질타만으로 평화를 지키려 했다. 실체 없는 것, 힘 없이 무력(無力)한 것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고 지킬 수 없다. 가장 값싸고 쉬운 꼼수를 택하려 했기에 인류는 또다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전쟁만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지구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종족으로서 마지막 1회의 찬스권을 쥐고 자기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다. 나는 이제 인류에 딱히 미래가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나는 뒤에 그 누구도 남기지 않기로 하였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
너희들끼리 싸워라. 더이상 말리지 않겠다. 무책임하게 이 세상에 누군가를 패대기친 이들끼리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저지른 죄를 두고 절규하도록 해라. 네 자식을 끌어안고 이제와서 미안하다 말하기라도 하란 말이다. 그러나 나는 평화 속에서 눈을 감아야겠다. 그러니 이 세계가, 인류의 위선이, 게으름이 좀 더 오래 버텨주기만을 기도해보겠다.
진정 선과 악으로 세상을 양분할 수 있는가: 고라니 목장
미국이 이란을 침공했다. 2026년 2월 28일에 일어난 일이다. 명분은 단순했다. 이란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제정일치(祭政一致) 독재정권이 인권을 유린하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을 막고 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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