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상에서 어떤 사람이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논란이 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SNS에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글의 게시자는 그들의 선전용(宣傳, Propaganda) 우상(偶像, Idol)이자 성자(聖者)에서 한순간에 사상의 배신자이자 배교자로 낙인찍혀 그들이 늘 누군가를 매달아 RT와 인용이라는 이름의 돌을 던지고 그들의 사상이라는 교리(敎理, dogma)로 심판하는 화형대에 매달아버린 것이다.
그가 평소에 올리던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게시물들을 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그들의 교리에 따른 채점표를 가져와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그를 그의 의지나 허락 하나 없이 제멋대로 우상으로 만들고 성자로 추앙한 주제에.
이 사건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나이 많고 노쇠하신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는 몇년 전 큰 수술과 투병생활을 겪고 급격히 약해지셨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불에 스스로의 시간과 생명력을 연료삼아 불태웠고, 그 헌신적인 간호와 수발로 인해 할아버지는 저승 문턱에서 드리프트 급 커브를 하는데 성공하셨다. 지금은 비록 예전처럼 건강하고 기운이 넘친다고 할 수는 없어도 본인께서 원하는 것을 하시고, 원하는 곳에 가실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회복하신 것이다.
하지만 큰 고비를 넘기고 약해진 할아버지는 예전과 다르게 입맛이 까다로워지셨고, 스스로도 자신의 까다로움에 많은 불편함을 겪었다.
딸들이 수고스럽게 좋은 재료를 구해와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드리고, 몸에 좋기로 소문이 난 음식을 구하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녀와 가져온 음식들을 넘기지 못하셨다. 딸들이 시간과 정성을 다해 구해온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 할아버지는 스스로 드실 수 있는 음식을 찾아나섰다. 주변에서 추천해주는 흑염소 고기라던가, 누가 장어를 먹고 건강을 되찾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같이 장어를 찾아 드셨고, 소고기가 기력에 좋다 하자 매일같이 부지런히 드셨다. 그 과정에서 두 딸들과 더불어 손녀인 나까지 열심히 지정된 음식을 구하러 발품을 팔고 지갑을 열어야 했던 것은 좀 귀찮고 짜증나는 순간도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한 할아버지는 간식거리도 넘길 수 있게 되셨고, 우리는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과일과 빵, 과자같은 군것질거리를 구해드리기 시작했다.
맛있기로 소문난 베이커리의 빵, 물은 하나도 안 넣고 우유만 넣고 비싼 재료만 넣어 만든다는 가게의 빵, 인터넷에서 SNS와 커뮤니티의 입소문을 타고 너도 나도 찾는 베이커리의 쿠키, 오로지 유기농 재료만을 고집하는 건강한 빵을 구해서 접시에 올려드렸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그 빵들을 쉽게 넘기지 못하셨고, 의외로 할아버지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수없이 많은 빵들 중에 할아버지가 택한 것은 유명한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빵이였다. 몇차례에 걸쳐 뉴스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빵을 굽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서 숨지고 과로로 숨졌던 것으로 뉴스의 1면을 장식하고 사람들의 공분을 사 불매의 대상이 되었던 바로 그 회사의 빵이였다.
밀가루를 얼마나 아낀건지 안은 구멍이 잔뜩 뚫려있고 우유를 아끼자고 물이라도 섞어 들이부었는지 퍼석했던 그 모닝빵은 무슨 매력으로 우리 할아버지의 입맛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가끔 권해주셔서 먹었지만 매번 먹을때마다 왜 다른 맛있는 빵들을 잔뜩 제쳐두고 이걸 드시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손녀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피 묻은 빵’이라 부르는 빵을 드시는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더 좋은 빵 놔두고 굳이 사람이 죽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여전히 같은 사고로 사람을 죽인 회사에서 만든 빵을 굳이 드셔야하는지 몇번이고 물었으나 할아버지는 그 빵을 여전히 선호하셨고, 할 수 없이 나는 할아버지가 그 빵을 드시는걸 내버려두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그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내게도 샌드위치나 간식거리를 사다주시곤 한다.
그 빵을 나는 감사히 먹는다. 비록 사람 죽인 회사의 공장에서 만든 빵일지라도, 그것을 사주신 할아버지의 마음은 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빵을 만든 공장의 노동자들의 손은 악마의 손이 아니고, 그 빵을 만드는데 들어간 기계를 설계하고 정비하는 기술자들도 악마가 아니며, 빵을 만드는데 들어간 재료를 키워내고 공급한 이들 역시 악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내가 겪었던 일을 꺼내느냐면, 간단하다. 위에 언급한 SNS의 타의에 의해 우상화 된 사람의 사건을 논하기 위함이다.
이어가자니까 좀 말이 길어지니까, 또 예전처럼 지난번에 써둔 글을 참고해서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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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의 성경, PC주의
팍스 로마나를 붕괴시킨 트리거는 로마인의 타락이였다.그들은 각종 신비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졌고, 더불어 그 끝에는 지금 우리가 부르는 LGBTQ까지 향락주의의 일부로 귀족과 지배계급들의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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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만들어진 세속적 종교
20세기까지는 세상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그 시절에는 비록 부족하고, 없고, 많이 미숙하고 곤란한 시대였지만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 내 이웃과 친구, 동료와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이 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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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을 짓밟는 난쟁이 https://shearestis.tistory.com/118
거인을 짓밟는 난쟁이
SNS를 하다보면 본의아니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많이 주워듣게 되는 것 같다.보다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요상한 신조어(新造語, Neologism)가 넘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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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2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세상에는 참 듣기 좋은 말이 많다. “너는 소중해”, “네 기분이 곧 법이다” 와 같이 인간의 로고스(Logos / λόγος)를 삭제한 채 감성(Pathos,πάθος) 만을 자극하는 비논리적인 포장지로 둘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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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함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9
결함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καλοκαγαθία)그리스어(헬라어)로 아름다움(Kalon, καλός)과 선함, 탁월함(Agathon, ἀγαθός)를 합쳐 만든 단어로, 육체적 아름다움(외면)과 정신적 덕(내면)이 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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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에서 언급한 SNS의 사례는 특정 개인을 성자로 추대했다가 입맛에 안 맞으면 폐기하는 ‘가변적 우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특정인을 성녀나 성자로 추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실체를 사랑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사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살아있는 증거'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증명하는 우상에게 자기들이 정한 사상의 교리를 들고와 채점을 해 점수와 등급을 매기고, 속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굴 수록 숭배하고 칭송하며 그를 추앙한다. 그 자체로 훌륭한 홍보 도구가 되어주는 순간에는 말이다.
하지만 우상화 된 성자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는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한 적이 없으며, 누군가가 그를 무대 위로 끌어올려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박수갈채를 보내 성자의 직함을 부여했다. 그에 따라 그가 어영부영 성자의 코스프레를 했을 수도 있고, 그 관심을 즐겼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것이 부담을 느끼거나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을 불쾌히 여겨 거부할 수도 있다. 거부한 경우 그는 바로 무대에서 화형대로 끌어내려져 돌을 맞고 불태워진다. 차라리 이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타의에 의해 우상이 된 이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끔찍했기에.
그는 자신을 쳐다보고 감시하는 수없이 많은 시선 속에 놓여지며 매 순간 자신의 언행을 누군지도 모르는 다수에게 체크당한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인간이라서 살아가며 당연히 실수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를 우상으로 만들었던 이들은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자신들이 우상으로 치켜세워 만들어준 성자가 교리를 어긴 순간, 그는 인격을 부정당하며 그가 쌓아온 삶의 서사를 이용했던 이들에게 철저히 폐기당한다. 사이버불링과 악플세례가 그러하다. 더이상 그들의 교리를 신성하게 만드는데 사용할 수 없기에 그는 형틀에 묶여 고문을 당하고 화형대에 묶여 불태워지면서 비이성적인 집단의 손에 정화의식을 치루게 된다.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경계하던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 또한 온갖 트집을 잡아서 함께 매장시키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워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경계한 순혈주의를,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교리를 지키고 타자의 다양성과 인권을 억압하고 유린하는 것에 써먹는 것이다.
우상이 된 성자를 무대라는 이름의 창살 없는 감옥에 올리고, 화형대에 묶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매 순간 검열하고 사상검증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 그들이 원하는 일인가?
이들의 논리대로면 같은 여자임에도 탈코르셋(Corset-free movement)에 동참하긴 커녕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몸매를 관리하며, 화장을 하고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옷을 선호하는 나는 악(惡, Evil)이자 틀린 것이 된다. 인권을 유린하고자 이런 삶을 사는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좋아서 이러한 삶의 방식을 택하고 살아가는 것임에도 말이다.
예쁜 여자나 여자 캐릭터, 아름다운 여자나 여자캐릭터를 보며 여자인 나도 예쁘다고 좋아하며, 성적 매력이 돋보이는 외모와 패션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조차 죄가 되어야한다. 내가 여자임에도 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재능이라 인정하고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다. 그것이 죄가 되어야 하는가? 왜 다른것은 칭찬해도 되고 외모는 칭찬해선 안된다고 우기는 것인가? 이것에 어떻게 악(惡, Evil)이라는 속성을 부여하고 죄라고 여기자고 정의한단 말인가?
글이 길어지니까 예전에 써둔 글으로 이야기를 마저 대신하고자 한다.
◆ 평등의 가치를 왜곡하는 질투 https://shearestis.tistory.com/126
평등의 가치를 왜곡하는 질투
세상에는 다양한 재능이 있다. 누군가는 글을 잘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며, 누군가는 머리가 뛰어나고, 누군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뛰어나며, 누군가는 음악에 재능을 갖고 있다.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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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선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짓밟는 자들을 규탄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선함이라는 속성을 부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함을 정당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세상을 바랄 뿐이다.
그들은 누군가를 짓밟는 이가 부러워서 그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대신 앉길 바랄 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내 할아버지는 사람을 죽인 피 묻은 빵을 먹고 연명하는 죄 많은 노친네가 되어야한다.
과연 그들은 나의 할아버지를 향해 정녕 피로 물든 빵으로 타인의 생명을 빨아들여 연명하는 악마라고 손가락질 하며 늙은이를 화형대에 묶고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를 수 있는가? 그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정의이자 올바름인가?
악마는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오며 천사보다 성스럽고 그 어떤 미인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의태(擬態, Mimicry)하여 악(惡, Evil)을 선함의 포장지로 화려하게 감싸들고 다가와 어리석고 무지(無知)한 이에게 건네준다. 그리고는 그가 듣고싶어하는 말을 속삭여주며 지옥의 낭떠러지로 향하는 길을 향해 에스코트(Escort)한다. 그가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을 때 뒤에서 툭,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선(善, Good, Virtue)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다. 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정의가 될 것이나, 선을 정의하기 위해 증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악(惡, Evil)으로 전락할 뿐이다.
선은 숭배와 강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 순간 선은 가면을 벗고 악의 진정한 얼굴을 보이며 선하고자 한 이의 무지를 비웃고 지옥문을 열고 초대할 것이다.
타인을 우상삼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사상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이용하고 고작 일개 인간에 불과한 이가 자신들의 뜻에 어긋나는 순간 그를 악으로 몰아야 한다면, 어쩌면 그들이 주장하는 ‘절대적인 선’의 가치는 애초부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이 어떻게 절대성을 잃고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타인을 우상이라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을 두고 봐도 옳지 못하다. 그것은 타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것이므로.
어떤 게임회사의 인권유린이나 성차별과 같은 사건은 마땅히 지탄(指彈)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연장선에 누군가를 놓고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인권과 다양성, 정치적 올바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심각한 오류다. 그저 자기모순(自己矛盾), 자가당착(自己矛盾)에 불과할 뿐이다.
정의(正義, Justice)는 정의(定義, Define)가 아니다.
그는 왜 돌을 던지는가? 무엇을 위해 던지는가? 무엇을 위해 불을 지르려 하는가?
무엇 때문에 돌을 던질 곳을 사람들에게 고하였는가?
왜 형틀과 화형대를 설치하고 돌을 든 이들이 몰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는가?
그 빵에는 죄가 없다: 고라니 목장
SNS상에서 어떤 사람이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논란이 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SNS에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글의 게시자는 그들의 선전용(宣傳, Propaganda) 우상(偶像, Idol)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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