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유의 정원

나의 할머니는 어디로 갔는가

◆몇년간 그림을 거의 못 그린 이유

 

내 할머니는 인지장애를 겪고 계신다.

엄마 말로는 치매가 아니라 인지장애 라고 하지만, 그게 치매랑 대체 뭐가 다른지 도저히 모르겠다.

예전에는 10분마다 했던 말을 반복하곤 하셨던 할머니는 최근들어 5분마다 했던 말을 반복하게 되었다. 점점 기억이 사라지는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몇년동안이나 진행되던 이 증상은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가 붙더니 손을 쓸 틈도 없이 급격히 나빠져버린 것이였다.

 

오늘은 할머니와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강아지와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 강아지는 오늘도 아침잠을 잔다고 잠에 취해 있어서 아침 겸 점심을 먹지 않았고, 강아지를 위해 아미오 강아지 간식 칠면조 육포를 가져갔다. 동일한 제품 라인의 닭고기나 사슴 육포 등도 먹여봤지만 오로지 칠면조 육포만 사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말랑말랑하고 육질이 통통해서 먹기에 이가 안 아플 것 같고(내가 직접 먹어봤다) 자르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식사를 차리는 동안 강아지는 잔뜩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온갖 어리광과 재롱을 부렸다. 인간보다 네가 더 낫구나 하는 마음으로 보고있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강아지가 밥을 안 먹어서 어쩌냐는 걱정을 시작했고, 그걸 이미 예측했던 나는 준비한 강아지 간식을 건네드렸다.

 

이런! 까먹어버린 것이다. 할머니의 기억초기화 증상을!

강아지는 신나게 간식을 받아먹고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끙끙대며 애교를 부렸고, 할머니는 기억이 자꾸 날아가는 바람에 간식을 줬는데도 잊고 또 주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우리 강아지만 잭팟이 터진 날이였다. 점심동안 육포를 4개나 먹는 소형견이라니, 넌 오늘 간식 없다.

하지만 난 안다. 이래놓고 집에 가면 저녁에 간식을 달라고 끙끙댈거고, 가족들이 과일을 먹을때 당연히 자기도 옆에서 날름날름 받아먹으며 빵과 과자까지 탐낼거라는 것을. 그래, 너 좋으면 된거지.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할머니와 식사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의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인 것일까?

5분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우리 할머니는 종종 최근 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한 말 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전에 몇번이고 집 근처에서 길을 잃던 할머니를 위해 가방과 핸드폰에 인식표를 주문해 달아드리고 미아방지팔찌를 채워드려야 할 정도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아마도 계속 이렇게 될 것이고, 과학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막을 길은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나도 할머니에게서 유전자를 받았는데,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하나?’ 였다. 그림이나 만화를 그려 올리는 취미 블로그에 이러한 글들을 써서 올리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 공포에서 시작되었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처럼 기억을 잊어버린대도 어딘가에 남겨뒀다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와 이어지기 위해 손을 뻗고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신지 몇년이 지났고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하루에도 몇장씩 시간을 쪼개가며 즐겁게 그리던 만화와 그림을 그릴 기력조차 사라졌고, 어느샌가 나는 펜을 잡을 기운조차 사라져버린 것이였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간 병원 대기실과 카페, 복도에 앉아서도 타블렛을 들고 쪼그려서 그림을 그리던 반짝이던 열정은 어느새 식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잔뜩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릴 수가 없다. 그리고 싶은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진다. 타블렛을 켜놓고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 끝난 적도 있다.

 

몇년 전만 해도 그리고 싶은게 잔뜩 떠오르고, 몸이 여러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정적이였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는 결코 끝날 일이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쳐가고 있는 기분이다. 두분은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몸에 좋은 보양식을 사달라고 요구하고 약을 몇개씩 드시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모르는걸 가르쳐달라, 해결해달라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나를 쪼아대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가 죽기 전엔 이 지옥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을때는 ‘어쩜 저렇게 염치없고 파렴치할 수 있나?’ 하는 마음까지 품곤 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살고싶어하는 두분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 아닌가.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는게 맞지 않을까 하고 매일밤 잠에 들면서 내일 일어났을땐 제발 내가 몸에서 떠나있기를, 죽어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그와 동시에 이 비극을 두고 사유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 

 

인간은 단지 인간이란 몸에 깃들어 있어서 인간이 아니다.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몸과 그에 깃든 영혼, 그리고 살아온 시간 속에 쌓인 나의 기억, 그리고 타인이 나를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살아온 시간 속에 쌓인 자신의 기억을 잃고 있다. 새로운 기억을 쌓을 수 없어졌다. 쌓더라도 일부가 날아가 사라져버린다.

그것을 나의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것인가?

할머니를 모욕하거나 부정하려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할머니가 지금 할머니 자신이 정의하는 할머니가 맞는지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로 구성된다.

※ 진리 탐구 메모 https://shearestis.tistory.com/98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shearestis.tistory.com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우리의 영혼에 축적됨과 동시에 섭리의 기둥을 타고 아카샤(Akasha / Ἀκάσα)에 기록된다.

그러면 이렇게 인지장애가 생겨 기억에 오류가 생긴, 새 기억을 저장할 능력에 결함이 생겨버린 할머니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영혼은 프네우마를 동력원으로 삼아 우시아를 통해 존재하며 로고스를 발현해 자아를 구축한다.

그리고 온토스(Ontos / Ὄντος)라는 현상으로 발현되어 육체에 깃들고 3차원 물질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할머니의 온토스에는 무언가 에러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육체가 죽은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치매라는건 과학적으로 질병이 아니라 증상, 그러니까 현상이라고 한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뇌 손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말하며, 억력 장애, 언어 장애, 시공간 파악 능력 저하, 성격 변화 등을 동반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치매로는 알츠하이머라던가 혈관성 치매(뇌경색 같은거), 파킨슨 치매 같은게 있다는데 할머니는 어느쪽인지 잘 모르겠다.

조기에 치료할 시에는 진행을 늦추거나 완치도 할 수 있다는데 이미 할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형이하학적으로,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할머니의 몸은 여전히 생체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 빠진 풍선같은 몸이지만 여전히 살아계시니까 말이다.

여전히 5분마다 한번씩 내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내가 집안일을 도우러 올 때마다 내 옆을 기웃거리는 다정한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은것이 맞다.

 

하지만 과연 형이상학적으로 지금의 할머니가 과연 나의 할머니가 맞는걸까?

나의 기억 속 할머니는 할머니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할머니가 없는 세상에 존재해본 적이 없으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할머니는 언제나 내 삶 속에 계셨다.

할머니는 나의 모든 삶을 지켜봤지만 나는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할머니의 삶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내가 아는 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

 

치매라는건 뇌 조직이 괴사하거나 뇌의 신경세포가 죽는 증상이라고 한다. 가장 최근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먼저 파괴된다고 한다. 그래서 10분마다, 5분마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였나보다.

그런데 양자역학 같은 이야기로 가서, 만약 이것이 그 속에 담긴 기억이 파괴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섭리의 기둥을 타고 기억이 저장되는 아카샤에 닿지 못하게 되는것이면? 그러니까 다시 말해 아카샤(시스템 소스 코드)에 접근하는 경로가 끊어진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면?

 

자아는 기억의 조각들의 연속이다. 기억의 조각이 사라진 ‘나’는 결코 과거의 나와 동일인물이지 못할 것이다. 이거 예전에 내가 포켓몬스터 레전드 아르세우스 2차창작 노보리 만화에서 그렸던 것 같은데 거의 1천장이 넘게 그렸다보니 몇번 파일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중에 찾아보겠다.

 

과학적으로 뇌의 회로가 타버린 것이 치매라면, 이 타버린 회로를 복구하는 기술이 나와서 재생했을 때, 우리 할머니는 과연 내가 알던 할머니로 돌아올 수 있는것일까? 아니면, 이미 기억이 손상되어버린 채로 새로운 회로를 재생한 것이기에 거기엔 할머니의 기억이 영원히 없어진 것일까? 또한,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졌다 해도 아카샤에서 클라우드 다운로드 받듯 할머니의 백업된 기억이 뇌로 깃들 수도 있는 것일까?

 

◈◈◈

 

나의 할머니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며 내 영혼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심연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이토록 이기적이면서도 냉정한 사람이였다니. 두분을 사랑으로 모시고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미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썩 기분좋지 않다.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 길고 긴 터널을 끝없이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며 또다시 죄책감이 고개를 들고, 이것이 반복되는 것 같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 역시 반복된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금 이 순간도. 하지만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https://posty.pe/kj4rtp

 

나의 할머니는 어디로 갔는가: 고라니 목장

내 할머니는 인지장애를 겪고 계신다. 엄마 말로는 치매가 아니라 인지장애 라고 하지만, 그게 치매랑 대체 뭐가 다른지 도저히 모르겠다. 예전에는 10분마다 했던 말을 반복하곤 하셨던 할머니

www.postyp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