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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소꿉친구 커플의 환상

동창 중에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친구가 있다.

 

솔직히 좀 놀라웠다. 이 친구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명품을 좋아해서 엄마의 가방을 가져와 자랑하듯 걸치며 이건 무슨 브랜드라고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한 나이에 걸치며 자랑을 하고, 명품 브랜드 이름을 줄줄 외우는 친구였는데 결혼 상대는 그냥 초등학교 동창이라니.

이 친구와의 추억은 참 많다. 그 중에 참 기억에 많이 남는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웠던 옛 기억보다는 그 친구의 잔인한 성정이였다. 참고로 악감정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고, 그 친구를 그냥 떠올리고 있는 것 뿐이다.

 

슈퍼에 가서 가게 주인 몰래 껌을 훔치며 스릴을 느끼며 내게도 그것을 강요했으나, 어린 나이였지만 겁 많은 나는 완강하게 그것을 거부했기에 다행히도 도둑질은 내 친구만이 즐겼다. 좀 더 용기를 내서 가게 주인에게 내 친구의 부정을 고발했어야 했지만 어린 나는 비겁했고, 친구의 범죄를 그저 지켜만 봤던 무력한 소녀에 불과했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학습지를 배달하는 배달부의 자전거에서 몰래 학습지를 훔쳐서는 그걸 전리품처럼 내게 보여주며 공부한 흔적을 보여주곤 했는데, 나와 분명 동갑임에도 이 친구에게는 도덕적인 품성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느꼈다. 단지 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친구를 나의 철없던 시선으로만 바라봤기에 이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스쿨버스의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 머리를 잡고 유리창에 찧어대며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웃어대거나 하던 친구는 뜻밖에도 예체능의 한 분야에 재능을 보였고 각종 콩쿠르(concours)에서 상을 휩쓸어 그녀의 어머니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을 선사하곤 했다.

 

내 엄마는 그런 내 친구의 모습과 나를 허구헌날 비교해대며 내가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너는 누구 똥이나 빨아먹고 살아라” 혹은 “누구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 왔다는데 너는!” 이라는 식으로 매 순간 나의 인격과 영혼에 비수를 꽂고 난도질을 하였으나 그건 내 엄마가 미숙한 한 인간에 불과했기에 저지른 수없이 많은 실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죄가 아니게 되는 것은 또 아니다만. 어린 날의 나는 이불속에서 혼자 그 비수를 뽑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스스로 치료해야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엄마는 자기가 이런 말을 했다는걸 말해줘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친구의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성정 속에 일어난 사건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굳이 이걸 다 꺼내놓는다면 내 친구는 속된 말로 ‘나락’ 가기 딱 좋은 수준인지라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하지만 본인이 보면 자기 이야기인줄 알 지도 모른다. 만약 읽고 수치심이라도 느꼈다면 너의 영혼에 아직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가 빛나고 있는 증거라 믿고 너를 축복하고 싶다. 만일 일말의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너는 정말 거기까지밖에 되지 못하는 존재이리라.

 

놀랍게도 이 친구는 이 재능 덕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처음으로 겪는 따돌림과 인종차별 속에서 자신이 약자(弱者, Underdog)의 포지션에 서본 덕일까? 들려오는 말로는 그 이후로 철이 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내 친구가 머나먼 이국 땅에서 홀로 따돌림과 인종차별 속에 눈물을 흘렸을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이 이야기를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전해들었는지 그 친구는 내 분노를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그 친구의 도덕적 결함과 범죄를 옹호하기에 분노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한 인간을 향해 쏟아진 폭력을 향해 또다른 인간으로서 분노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하튼 이 친구는 이러한 사건들을 겪고 성장하며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회에 진출했고, TV에도 나오기까지 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얘가 걔???’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너무 변해버린 얼굴에 본인이 방송에서 자기 이름 석자를 언급하며 자기소개를 해도 전혀 모르겠군 하고 마저 방송을 봤던 적이 있다.

 

결혼 소식이 들려오기 전부터 이 친구는 참 잘난 남자친구를 많이도 사귀었다고 들었다. 집안에 돈이 많은 남자, 자기와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남자 등을 말이다. 참 잘 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내 친구는 워낙 어릴때부터 명품을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성향이였으니 그러한 남자를 만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결혼 상대는 그 쟁쟁한 남자들을 제치고 평범한, 초등학교 동창이였던 것이다. 앞서 말한 남자들을 생각하면 너무 평범한데? 진짜 본인 의지로 결정한거 맞나 싶을정도로 내가 알던 그 친구가 고를법한 사람이 아닌 것이였다.

 

알고보니 나와 달리(난 정말 귀찮음이 많아서…) 꾸준히 초등학교 동창회에 출석했던 내 친구는 거기서 초등학교 동창을 사귀고 결혼을 약속한 것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신기하네…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렇지만 그렇게 됐다.

 

그리고 내 친구의 결혼 소식과, 주변에서 이어진 소꿉친구 커플의 사례를 떠올리며 갑자기 또 사유(思惟)가 시작되었다. 늘 이 패턴이다. 정말 사유하는 나는 멈추지 못하는 모양이다.

 

◈◈◈

 

내가 지켜본 바로 소꿉친구 커플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니 <사랑의 형태 정리 https://shearestis.tistory.com/99> 글에서 좀 참고해가며 설명하고 싶다.

 

사랑의 형태 정리

사랑의 4단계 위계1. 최선의 사랑 • 정의: 서로가 서로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등을 맞댈 수 있는 전우/파트너.• 특징: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무언가를 해주는 것에 대해 손해라는 생각을

shearestis.tistory.com

 

 

◆지속형 소꿉친구 커플 : 필연, 운명, 사랑, 서사(Narrative) 중시

어려서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사랑을 키워왔으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한 커플.

이 커플들은 중간에 헤어짐이 없고, 헤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학업이나 물리적 거리 등에 따른 이유이지 자발적이거나 적극적인 이유로 헤어지지는 않는다. 이들의 헤어짐의 이유는 ‘미래를 위한 잠시간의 멈춤’에 불과하기에 ‘타의’로 분류하고자 한다.

또한 이들은 서로 외의 이성과 교제하지 않고 오직 서로만이 유일한 상대인 관계를 지속한 것이다.

이 유형은 대부분 제1위계인 [최상의 사랑] 위계에 속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 온토스(Ontos / Ὄντος)의 실재

-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의 제대로된 발현

- 그럼에도(even if),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전형적인 로맨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 장기 만족도와 안정성 높음

- 정체성 융합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음. 심리학자 아서 아론(Arthur Aron)의 '자기 확장 모델(Self-Expansion Model)'에 따르면,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한 연인은 상대의 자아를 자신의 자아 안에 완전히 통합시킨다고 함.

- 상대의 맥락을 이해하는 수용적 태도가 높음.

- 내재적 동기

- 조건 없는 선택의 아름다움

- 교제 중 만나기 어려운(장거리라던가) 상황이 있어도 그걸 이유로 헤어지지 않음

- 시련 극복 경험 있음

 

◆재회형 소꿉친구 커플 : 편의성, 친숙함

어려서 교제했던 적이 있으나 이별을 경험했음. 이별은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비자발적인 이유로 인해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비자발적인 이유가 있더라도 그것은 트리거가 될 뿐이지, 메인(Main)이 되는 이유는 되지 못하는 이별이다.

또한 이들은 이별 후 서로 외의 다른 이성과 교제해본 경험이 있으며 서로가 상대의 유일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혹은 한쪽은 헤어짐 이후 그대로 이성을 교제해본 경험이 없을수도 있고.

만약 둘 다 헤어진 뒤 또다른 이성과의 교제가 없을 경우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지속형 소꿉친구 커플과 동일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지속형과 다르게 재회형은 ‘자의’에 의해 헤어짐을 선택해 이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혼기 혹은 적령기, 가임기가 되었을 때 재회하여 겪어본 사람들 중 제일 나은 선택지 혹은 익숙한 선택지로서 서로를 고르고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에 대한 관계는 ‘보류(保留, Reserve)’ 의 형태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제2위계인 [차선의 사랑]이나 제3위계인 [사랑 쇼핑]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친숙함의 오용 : Familiarity Bias)

- 차선의 타협, 가장 나은 매물

- 그래서(because)

- 서로의 공백기(성인기 자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위기가 닥치면 상대의 '본질'을 의심하기 시작하여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음.

- 친숙함이 진짜 애정으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있음.

- 외재적 동기

- 조건, 타이밍, 익숙함의 타협

- 노스탤지어 효과(Nostalgia Effect) : 과거의 감정 소환, 감정 소환으로 인한 초기 흥분

- 교제 중 만남이 지속되기 어려운 이유가 있으면 헤어진 경험 있음

- 시련 극복에 실패한 경험 있음

 

◆급조형 소꿉친구 커플 : 편의성, 친숙함, 도피처(逃避處, Refuge)

어려서 알고 지냈던 사이는 맞으나, 연인으로서 교제했던 경험은 없는 사이.

어른이 되어서 우연히 혹은 어떤 이유로 다시 만났을 때, 때마침 결혼적령기에 해당해서 호감을 품고 교제하게 되는 케이스.

이들 역시 2번째 유형(재회형 소꿉친구 커플)과 같이 서로 다른 이성과 교제해본 경험이 있거나 한쪽이 모태솔로일 경우도 있다. 양쪽이 다 모태솔로인 경우도 있고.

결혼시장에서 괜찮은 매물이 없는 상태로 혼기가 지나가기 전, 이미 어느정도 정보를 갖고 있는 상대를 골라 호감을 품고 결혼하는 타입이라 로맨틱하다 느껴지진 않는다. (친숙함의 오용 : Familiarity Bias)

이들 역시 재회형과 비슷하게 제2위계인 [차선의 사랑]이나 제3위계인 [사랑 쇼핑]의 사랑을 하는 모습이 보이나, 대부분은 제3위계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 사랑쇼핑의 떨이, 막판 스퍼트

- 마치(As if), 차라리(Rather)

- 서로의 공백기(성인기 자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위기가 닥치면 상대의 '본질'을 의심하기 시작하여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음.

- 친숙함이 진짜 애정으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있음.

- 외재적 동기

- 조건, 타이밍, 익숙함의 타협

- 노스탤지어 효과(Nostalgia Effect) : 과거의 배경 소환, 배경 소환으로 인한 안정 추구

- 과거 서로 교제했던 경험이 없음. 그에 따라 이별한 경험도 없음.

- 시련 없었음

※ 위에서 말한 내 친구가 3번 급조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

 

쓰고싶은 말이 많은데 또 길어질거 같아서 이전에 쓴 글들 놓고 마저 이어가고자 한다.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https://shearestis.tistory.com/117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결혼은 타이밍이다’‘혼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있다’ 흔히들 어른들이나 기혼자들이 해주는 말이다.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그것이 시기에 잘 맞물리면 결혼으로

shearestis.tistory.com

 

◆사랑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https://shearestis.tistory.com/124

 

사랑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오늘도 싱글벙글(은 무슨) 좀비같은 걸음으로 아침 요가를 하러 가는 길에 버스 옆면에 붙은 ‘결혼정보회사’ 광고를 봤다. 마음속으로 ‘싱글이세요? 전 벙글이에요.’ 같은 어디서 주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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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https://shearestis.tistory.com/123

 

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농담으로라도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아무튼 해줘.”“몰라, 그냥 해줘”“그냥 줘.”“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줘.”“아무 노력 없이 갖고싶다.”“노력 없이 이기고싶다.” 듣기만 해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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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혼이라는건 마치 인생 속 유일한 특등석(VIP석)을 단 한명의 이성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서로 다른 삶을 살며 자라온 두 남녀가 수없이 많은 인연 속 인생의 교차로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고 하나가 되어 살아가자 약속해 맺어지는 신성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비즈니스처럼 거래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거래를 하겠단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으로 거래를 하고, 거래로서 사랑을 얻고자 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재회형이나 급조형 커플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단지 그냥 내가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좋게 잘 사는 커플들은 분명 있을것이다.

다만 나의 ‘사랑’에 대한 기준이 높고 숭고하기에 자꾸만 사랑이라는 것을 직시하며 그것이 무엇일까 끝없이 궁금해하며 사유(思惟)하게 되는 것 뿐이다.

 

난 그냥 내 어린 시절의 사치스럽던 친구가 늘 내게 하던 말인 “나는 엄청 부자인 남자랑 결혼할거야!” 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기에, 항상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그 말을 내려놓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내 친구를 두고 끝없이 생각을 이어갔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진짜 의외이기는 하다. 얘가 정말 그럴 애가 아닌데…

심지어 몇년 전까지는 결혼생각은 커녕 자기 커리어를 생각해서 평생 비혼으로 살겠다고 했던 친구인데 말이다. 신기한 일이다 정말.

 

사랑이 무엇이길래 자꾸 이렇게 궁금하게 되는 것일까?

어떤 사랑이 사랑이고, 어떤것이 사랑의 모조품인 것일까?

사랑에는 호감이 들어가지만 호감은 사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호감을 들고 이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면 분명 깊게 생각하고 들여보지 않은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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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 커플의 환상: 고라니 목장

동창 중에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친구가 있다. 솔직히 좀 놀라웠다. 이 친구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명품을 좋아해서 엄마의 가방을 가져와 자랑하듯 걸치며 이건 무슨 브랜드라고 고작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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