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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결혼은 타이밍이다’

‘혼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있다’

 

흔히들 어른들이나 기혼자들이 해주는 말이다.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그것이 시기에 잘 맞물리면 결혼으로 이어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살게 된다고.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 옛날에서부터 지금까지, 비록 일부 시대나 지역에서는 중매결혼만이 허용되었던 때와 장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남녀가 만나 호감을 가지고 고백을 해 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그 끝에 결혼에 이르러 가정을 꾸리곤 했다.

근대와 현대에서는 연애결혼이 선진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녀가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 보편화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갑자기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물론 IMF라는 커다란 위기가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던건 맞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상하리만치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가 오염되고, 사랑 속에 당연히 자리해야할 신뢰와 믿음, 존중 등의 절대적이어야만 할 가치가 사라지고 그 안에 쾌락과 이기심이 들어가서는 원래 그곳에 자기들이 있었다는 것 마냥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사랑을 사칭하고 있다.

 

스탑럴커(Stop Lurker), 설거지론(The Dishwashing Theory), 마통론(Negative Bank Account Theory), 퐁퐁남, 도축론(The Slaughter Theory), 매매혼에 대한 가벼운 태도 등, 세상에 가득 뿌려져버린 사랑에 대한 모욕적인 인식들이다.

하나같이 너무나 끔찍하고, 사랑이라는 단어에 감히 갖다대는 것 조차 경멸스러운 개념들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정도로.

 

◈ 궁금해서 찾아봤음 ◈

 

◆스탑럴커(Stop Lurker)

- 스타크래프트(Starcraft)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럴커(Lurker)라는 유닛이 있는데, 미리 지면 아래에 잠복해 있다가 적이 다가오면 바닥에서 가시를 지면 위로 솟아나게 해서 공격하는 타입의 유닛이 있음. 이 유닛이 자동공격하지 않게 잠깐 행동을 멈춰뒀다가 적이 사정거리 내에 들어와 도주하기 어려운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공격을 개시해서 적을 섬멸하는 방식의 전술을 스탑럴커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도 예전에 이모부와 동생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해보았을 때 럴커가 너무 무서웠다.

- 위에 설명한 것의 응용으로, 연애시절(결혼 전)에는 자신의 본 성향이나 본색을 숨기고 있다가 결혼 혹은 혼인신고 뒤에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

- 주로 여성에게 사용되는 멸칭으로, 숨기고 있던 성향 속에는 과거(이혼경험이라거나 동거 경험 혹은 글로 쓰기 민망한 수준의 것들), 잘못된 페미니즘, 사치, 빚, 성격 등이 있다. 남자에게 사용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 좋아하는, 혹은 놓치고 싶지 않은 조건의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자신을 숨긴 채 접근해 결혼하려는 여자들을 지칭하는 모양이다.

 

◆설거지론(The Dishwashing Theory)

- 대한민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DC Inside)에서 나온 이야기로, 당시 유행하던 ‘퐁퐁남’ 이라는 단어와 결합해 기혼 남성들의 삶을 희화화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설거지’ 라는 비유가 나오면서 붙은 이야기.

- 연애경험이 있는 여자들이 마지막 연애 끝에 결혼한 남자에 대한 조롱적 표현으로, ‘즐길거 다 즐긴 뒤에 안정적인 삶을 위해 성실한 남자 하나 잡아서 결혼했다’ 라는 식의 이야기.

 

◆마통론(Negative Bank Account Theory)

- 마이너스 통장론의 줄임말.

- 결혼할 때 결혼자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서 결혼한 뒤, 배우자와 함께 그 빚을 갚아 나간다는 이야기.

- 결혼 상대를 잠재적인 경제 사기꾼으로 간주하게 하는 경향이 있음.

 

◆도축론(The Slaughter Theory)

- 결혼생활을 일정 기간 유지하면 이혼 시 법적으로 재산을 반씩 나눠 가지도록 하는 법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상대방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

- 주로 남편 쪽을 ‘도축당하는 가축’에 비유하며, 아내가 가해자 포지션인 경우가 많음.

 

◆가부장제 보너스 (Patriarchal Bonus)

- 선택적 가부장제 (Selective Patriarchy)와 같은 이야기.

- 현대 사회에서 동등한 인권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과거의 가부장제가 남자에게 주던 집안 내의 최종결정권, 성씨, 시가에 대한 아내의 효도(대리효도 라고도 함) 등의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리려 함과 동시에 아내에게 맞벌이를 요구하는 등의 행위.

 

◈◈◈

 

사실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가 많이 망설여졌다.

현대 사회 젊은이들에게 있어선 아주 민감한 문제이고, 이로 인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할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서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악담을 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조차 거부하고 상대방을 악마화 해대는 주제인데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모두 옳지만은 않을 것이라.

 

그럼에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어째서일까?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존중하고, 하나 되어야 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매도하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이 펼쳐져버린 것이 너무나 괴로워서일까?

왜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있고 영혼이 그렇게 하라고 태초부터 빛나고 있는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너무도 당연한 섭리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거래가 되어버린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랑을 수단으로 여기는 자’들이 감히 사랑이라는 가치를 모욕하고 왜곡시켜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도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텐데.

 

사랑에 대해서는 나의 ‘사랑의 형태 정리(https://shearestis.tistory.com/99)’ 글에 써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의 형태 정리

사랑의 4단계 위계1. 최선의 사랑 • 정의: 서로가 서로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등을 맞댈 수 있는 전우/파트너.• 특징: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무언가를 해주는 것에 대해 손해라는 생각을

shearestis.tistory.com

 

이 ‘사랑’ 이라는 개념에 대해 나의 ‘트리니티 시스템 가설(https://shearestis.tistory.com/98)’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 The Golden Mean, mesotēs[μεσότης])’을 가지고 감히 사유해보고자 한다.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shearestis.tistory.com

 

물론, 사랑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창조의 힘이자, 모든 것을 비추는 빛이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어둠이며, 혼돈이자 질서 그 자체이기에 감히 3차원상 물질계에서 생겨난 인간의 언어만으로 그 거대한 본질을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빙산의 일각조차 되지 못할 부분밖에 언어화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속에 포함되는 많은 형태의 인연이 모두 그렇다.

상대를 위해주고, 상대에게도 나와 같은 인권이 있음을 알고, 상대에게 기대며 그가 나에게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중용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는것이 아니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으며, 그것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순환될 때 비로소 사랑으로 성립한다.

사랑을 에너지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일방적으로 보내지는 에너지는 소멸하기 마련이다. 사랑 역시 순환의 구조를 띄었을 때 비로소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목적이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는 이만큼 주는것이 당연하다, 내가 너에게 고백을 했으니 너는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구애를 하였으니 너는 이 구애에 대해 마땅히 보상을 해야한다 등의 개념은 사랑을 수단으로 삼는 일차원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의 정언명령에서도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 자연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은 정신이자 물질이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When poverty comes in at the door, love flies out of the window)" 라는 서양의 속담이 있다.

사랑은 마음만으로 이룰 수 없다. 우리 인간은 3차원 물질계에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로서, 단지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힘만을 주장해봤자 그것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가 가진 매력과 물질적인 능력, 재능 등의 수단이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사랑을 논할 수도 없다. 이 그릇에 정신의 사랑을 담아야 비로소 그것이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이기에 그릇에 담지 않으면 흘러내려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그릇에 물이 담겨있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텅 빈 그릇에 지나지 않다. 그릇이 더럽거나 못생겼거나, 이가 빠져서 입을 댔을 때 다칠 수 있거나, 너무 작다면 물을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비워냄과 채워냄이다.

품 안 한가득 나의 비대한 자아를 끌어안고 있으면 누군가가 건네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사랑을 주울 수도, 받기 위해 손을 뻗을 수도 없다.

비워냄으로서 비로소 사랑을 채울 수 있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한껏 자리를 차지하면서 ‘내 옆에는 아무도 와서 앉지 않는다!’ 라고 씩씩대봐야 대체 누가 옆에 와서 함께 앉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화가 잔뜩 난 그 사람을 보고 피해가거나 접근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랑은 당연하지 않음과 감사의 연속이다.

주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으며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상대에게 그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의 동시발현이다.

그것이 조화롭게 발현되었을 때 비로소 사랑은 온토스(Ontos / Ὄντος)의 형태를 갖추고 사랑으로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진리 탐구 메모 참고 (https://shearestis.tistory.com/98)

 

사랑은 하늘에 떠있는 별이자 동시에 우리의 영혼 속에 태초부터 빛나고 있다.

돌을 들고 이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별이라고 우기며 그것이 틀렸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 속에도 분명 사랑이 숨쉬고 있다.

물 위에 비친 달과 별의 빛을 보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이들은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사랑을 그토록 원하고 있기에 사랑을 찾아 헤메는 것이다.

연못 위에 피어난 연꽃과 같이, 마냥 빛나고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불변이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기 위해 끝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나아가는 행위이다.

영원하기 위해 필멸을 노래하며, 필멸이기에 영원을 갈망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 필멸을 받아들이고, 그 필멸의 순간순간을 이어 영원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짧은 찰나에 불과한 삶이 이어지면서, 살아가면서, 끝없이 윤회하며 생(生)과 사(死)를 거듭하는 속에 사랑은 영원해진다.

 

사실 남자와 여자를 편가르고 싸워대며 돌을 던지고 추한 말을 내뱉는 이들은 가슴 속에 사랑을 원하는 끝없는 갈망이 숨어있다.

사랑을 하는 법을 모르기에, 받아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사랑하고 받아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 갈망을 이런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매도하며 난도질하는 것이다.

 

나도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을 알고 싶고, 알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사유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알지 못하기에 사랑은 이것이다 하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몰라 폭력을 행하는 자들을 동정한다.

사랑을 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받으려고만 하면서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울부짖는 이를 동정한다.

사랑을 빼앗기기만 하며 돌려받지 못함에 찢어진 가슴 속 처절하게 울부짖는 영혼을 동정한다.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https://posty.pe/etkzft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고라니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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