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동제자 라는 단어를 주워들었다.
신내림을 받은 직후부터 약 3년에서 5년까지의 뉴비(Newbi) 무당을 이렇게 지칭한다고 한다..
어떤 생각으로 인간에게 신이라는 존재가 다가와서 자신을 받아들이길 강요하고, 자신의 꿈과 미래를 원하며 거세게 저항하는 인간을 신병과 인다리라는 저주로 무릎꿇리고 자신의 그릇으로 만드는 것을 ‘신내림’ 이라고 한다.
진정한 신이라면 인간을 그릇으로 삼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신을 거부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존재를 무참히 짓밟아대지도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나의 ‘트리니티 시스템 가설’(https://shearestis.tistory.com/98) 과 ‘영혼의 해킹, 빙의와 강령’(https://shearestis.tistory.com/110) 글을 토대로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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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킹, 빙의와 강령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되기 어려운 현상인 빙의와 강령, 강신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속행위 한국의 무속 신앙 속 ‘굿’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들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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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뉜다고 한다.
강신무는 아무 연고도 없는 일반인(아르노스)에게 신이 자신을 받아들이라며 접근해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고, 세습무는 집안 대대로 그 집안의 누군가가 계속 무당으로서 신을 받아 모시며 자손에게 그 신을 물려주는 형태의 무당이다.
신을 받아들인(신내림) 무당들은 처음 무당 세계에 입문(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하면서 애동제자라는, 게임으로 치면 뉴비(Newbi) 타이틀을 받는다.
사족이지만, 왜 무당을 제자라고 표현하는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애동 시절의 무당은 신발이라 불리는 무당으로서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상태라고 한다. 게임으로 치면 새로 들어온 유저에게 뭔가 이것저것 재화를 퍼준게 아닐까?(아니라면 미안)
그 뒤로 몇년이 지난 뒤 능력이 안정되며 초창기의 신발은 좀 사그러들고 정식 무당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무당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무당집에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여기저기서 읽은 민속학 자료나 유튜브 영상에만 의존하는 것이니 단언하진 않겠다.
다만 나는 ‘신이 떠나버린 무당’ 이라는 것에 대해 듣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경찰견, 구조견, 탐지견, 안내견들도 은퇴하면 일반가정에 국가에서 분양을 보내주고 그들의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며 신경써준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꿈, 인간으로서 가고 싶었던 미래,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졌어야할 자유를 모두 빼앗아놓고 인간을 무당으로 만들어버린 ‘신’이라는 존재는 단지 그 무당이 늙었다는 이유로 그를 떠나버린다.
왜?
사랑해서, 인간을 가엾게 여겨 이 세상에 내려와 대리자를 구해서라도 이 세상에 영향력을 선사하고자 했던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삶을 깎아내면서까지 그릇이자 대리자가 되어준 무당을 왜 외면하는가?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말인가?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차갑고 서늘하단 말인가?
심지어 세습무에 있어서는 더 잔혹하다.
나이가 든 할머니 무당에게서 신이 떠나서, 그 자손에게 신이 깃들려고 한다.
당연히 당사자인 할머니도, 그 자손들도 반발한다. 그것이 ‘내림굿’ 이라는 형태로 발현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것 조차 신에게 ‘싫어요’ 라고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힘이 드니까 조금만 미뤄달라는 형식의 거부권이다. 언제까지고 거부할 수 없기에, 결국은 내 딸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가 신을 받거나, 더 치졸한 경우는 며느리를 들여 그 신을 떠맡기고 이혼을 시켜버린 사례도 존재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향해 하드웨어 마이그레이션(Hardware Migration)을 시도한단 말인가?
자신을 모시던 존재의 우시아(Ousia / οὐσία)가 예전과 다르다 하여 그 존재를 버리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에게 또다시 해킹을 시도한단 말인가?
자신이 버린 무당이 어떻게 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신이라는 존재가, 어찌 자신이 들어가기 위해 손상한 한 인간의 영혼을 원상태로 복구시켜 주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새 몸을 찾아 떠나서는, 새로운 인간에게도 같은 폭력을 반복해 가한단 말인가?
자비와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인가?
사실 인간을 소모품(Consumables)으로 여기는걸까? 단지 자신을 담아낼 그릇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이토록 잔인하고 무책임하게 버릴 수 있단 말일까? 일말의 아쉬움과 미안함도 없었던걸까?
애동제자부터 신에게 버려진 무당까지: 고라니 목장
애동제자 라는 단어를 주워들었다. 신내림을 받은 직후부터 약 3년에서 5년까지의 뉴비(Newbi) 무당을 이렇게 지칭한다고 한다.. 어떤 생각으로 인간에게 신이라는 존재가 다가와서 자신을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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