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하다보면 본의아니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많이 주워듣게 되는 것 같다.
보다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요상한 신조어(新造語, Neologism)가 넘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조어는 원래 그 개념을 지칭하던 단어가 너무 길어서 줄여서 말하거나(축약, 縮約), 원래 있던 단어를 응용하고 조합해 파생(派生)된 새 단어를 만들거나, 아니면 두개 이상의 단어를 붙여서 조합해 합성(合成)해서 쓴다. 아니면 음의 순서를 앞뒤로 바꿔서 도치(倒置)시켜 쓰기도 하고. 그게 아니면 원래 다른 개념을 지칭하던 단어를 가져와 완전히 다른 뜻을 붙여 쓰기도 한다. 말을 만드는 대신 외국어를 가져와서 편입시켜 쓰는 외래어(外來語)도 있다. 고유명사를 보통명사로 바꿔서 쓰기도 하고 발음이나 표기를 살짝 수정해서 쓰기도 한다.
언어는 원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이다. 아마 21세기의 대한민국 사람이 삼국시대로 가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려 시도해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들이 지구 곳곳에 존재하며, 사투리라는 개념도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방에 내려갔을 때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어서 교포로 오해받기도 하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동시대에 사는 사람임에도 지역이 다르면 언어가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그분들의 친절한 마음이 있기에 몇번 되묻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분들이 나의 서투름을 그들에 대한 경멸이라고 오해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오해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부모님(엄마와 아빠)을 ‘유전자 제공자’, 형제자매를 ‘혈육’이라고, 굳이 원래 존재하는 적절한 단어가 존재함에도 무엇때문인지 이 단어를 부정하고 해체하려 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체 왜 이런 의미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가면서 기존의 것을 그저 부정하고 해체하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
SNS상에서 흔하게 보이는 단어 중에 ‘남성’ 혹은 ‘백인남성’ 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어가 의미하는 개념은 알고있다. 아마 다른 이들도 이게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SNS에서 사용되는 이 단어에 담긴 속 뜻은 멸시나 경멸에 가깝다. 이유인즉 그들이 ‘기득권’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정말 이상한 논리다.
아빠,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백부, 숙부, 오빠, 오라버니, 남동생, 남자친구, 남편 등의 단어들도 ‘남성’이라는 속성을 가진다. 우리는 모두 엄마와 아빠의 사랑 속에 잉태되어 태어나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자란다. 엄마 혼자 아이를 낳을 수도 없다. 아빠 역시 엄마와 함께 아이를 만들고 길러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왜 지구의 반이나 되는 남자들을 원래 존재하던 ‘남성’이라는 단어로 가두고 경멸하며 때리려 드는것인가?
특히 이 ‘남성’ 앞에 ‘백인’이라는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백인남성’ 이라는 단어도 참 기가 막힌다.
이건 정말 폭력적인 단어왜곡이라 생각된다. 과거 유럽에 존재했던 위대한 현인들과 학자, 예술가 등의, 삶 전체를 바쳐서 업적을 쌓아올린 이들을 단지 그들이 부정적이라 생각하는 성별인 ‘남성’이라는 이름에 가둬놓고 부정하며 때리고 부수려 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자라서 무엇을 잘못했나? 니체가 남자라서 무엇을 잘못했나? 니콜라 테슬라가 남자라서 잘못한게 있나?
세종대왕(世宗大王, 李祹)이 남자라서 뭐 잘못한게 있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남자라서 나라를 못 지켰나?
전쟁이 났을 때 앞장서서 나라를 지키러 싸운 남자들이 뭐 잘못한게 있나? 분명 전쟁이 불러온 폭력과 죽음 앞에 무력한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을 느꼈을텐데도 그들은 등 뒤에 내 가족, 내 식구, 내 나라, 내 아내와 여자형제, 어머니와 할머니를 두고 물러서지 않았으며 목숨까지 바쳤다.
세계 1차대전도 2차대전도 분명 남자들이 일으켰고, 한반도를 분단시킨 남북전쟁(한국전쟁) 역시 남자들의 손에 의해 일어났다.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나라를 지키겠다고 최전선으로 달려가고 끌려갔던 것도 남자들이다. 지금 이렇게 속 편하게 앉아서 타이핑을 하며 그들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평화로운 시간도 목숨을 바쳐 평화를 지켜주고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프로그램이란 문명의 이기가 21세기의 주류가 되게 해준 기술의 기틀을 마련해준 것도 그들이였단 말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류도 꽃피지 못했고, 풍요로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를 누리며 전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던 시기조차 우리 인류는 구경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려는게 아니다. 남자는 여자가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남자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자라나기에. 여자 또한 남자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여자 또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에게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종족이 아니라 하나이며, 둘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해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적인 한계가 분명 있었다. 인정한다.
부계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자들은 철저히 소외되었으며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며 가축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으며, 아직도 그러한 지역이나 문화권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 혼자서 타개할 수 있었던 수준의 악습이 아니다. 시대 속에 이것이 잘못되었다 여긴 남자들이 있었으며, 그것을 사유할 정신적 근육이 없기에 순응했던 남자도 있었으며, 그 시대가 주어준 칼날을 잔인하게 휘두르며 여자를 유린하고 도륙했던 남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한계와 성취를 구분하지 못해선 안된다.
그들은 분명 시대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뤄낸 이들이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노비제도 자체를 없애진 못하셨다. 하지만 노비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알고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를 주는 제도를 만들거나 노비를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법을 만들어 그들을 보호하려 애썼다.
위에 말한 수많은, 역사 속에 이름 한줄 남기지 못한 평범한 남자들조차 남녀차별적인 시대 속에서 내 가족과 내 공동체, 내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스러져갔다.
위의 요상한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가치를 짓밟아 붕괴시키고 폐허로 만드는 이들은 관계 속 ‘숭고함’을 없애고 형이상학적인 사랑과 유대를 부정하려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이상한 단어에 집착하는 이들은 누군가의 삶 전체에 걸친 ‘성취’를 한계를 핑계로 부정하며 그를 통해 ‘소거’하려고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자라고 그의 철학이 부정될 수 없다. 이순신이 남자라고 그가 지켜낸 조선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남자라고 그가 만든 훈민정음을 버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저 쓰레기같은 단어를 쓰는 이들은 어떤 사람에게 라벨(Label)을 붙이고 해체하고 끌어내려고만 든다. 그들이 가진 맥락(Context)을 읽어낼 힘도 없거니와 그렇게 했다간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 때문에. 그렇기에 이렇게 치졸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기존의 고귀한 질서와 숭고한 이치를 모욕함으로서.
반지성주의는 치졸하다.
그들의 논리대로면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 없이 나에게 없는것은 남에게서 뺏어와 채우면 그만이다. 노력할 이유도 없다. 노력한 이들을 끌어내리고 주저앉혀 같이 바닥을 기어다니며 평등하다 외치면 자존감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지는 것은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본능대로 꼴리는대로 살면 그만이니까.
왜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이 일어났나? 왜 몽고가 전세계를 도륙하며 잔인하게 사람을 학살하거나 처형하고 여자를 공물로 바치라고 했나?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는가? 왜 유목민들은 약탈을 하나?
노력하는 대신 남의 것을 빼앗아 짓밟고 누리면 그만이기 때문 아닌가?
약탈과 야만의 시대는 더 강한 힘으로 종결되었다.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논하는 자들은 많았으나, 결국 그 논리를 실행해준 것은 강한 힘이였다는 말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맞서 싸우기 위해 일어나 힘을 합쳤으며 행동했기에 지금이 온 것이다.
참호 속, 전쟁터 한복판에서, 전쟁의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한 이들이 정작 그들의 시체 위에 올라 앉아 평화룰 누리며 그들의 시대적 한계만을 꼬집어 비웃는다.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 부수고 난 뒤 어디로 가고싶어서 그러는가?
과거를 모욕하고 부정한 뒤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나’를 있게 한 오래되고 가치있는 옛 것을 부정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서도 이러한 치졸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가?
이토록 오만한 상속자들은 왜 하늘의 별을 올려보는 대신 문명 도살자가 되기를 택한 것인가?
왜 거인의 시체 위에서 춤을 추기로 결심한 난쟁이들이 되었는가?
거인을 짓밟는 난쟁이: 고라니 목장
SNS를 하다보면 본의아니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많이 주워듣게 되는 것 같다. 보다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요상한 신조어(新造語, Neologism)가 넘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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