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아이를 잉태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
이것은 아이를 이 세상에 초대하는 것이다.
남녀는 부부가 되고, 부부는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
이 초대장은 받는 이에게 주어지며, 오로지 초대장을 보낸 부모에게 선택권이 있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그 초대장을 돌려보내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 초대장이 없다면, 그리고 부모가 세상 안쪽에서 문을 열고 아이를 초대해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원하던 원치 않던 절대 태어날 수 없다.
선택권은 온전히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누군가를 초대함에 앞서 깊게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를 세상에 초대한다는 것은, 물질은 채워내고 자아는 비워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 자격을 갖춰야 비로소 누군가를 세상에 초대해 가족이 되어달라고 할 수 있는 초대장을 보낼 권리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초대장을 쓰지 않고 아이를 세상에 끌어내 패대기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또다른 글인 ‘외로움의 무게(https://shearestis.tistory.com/109)’ 에서도 다루고 있으니 여기서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외로움의 무게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무게를 견디며 고통을 겪고 외로움에 사무치며 살아간다.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선택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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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초대장을 써서 보내는 것과 외로움에 아이를 문 밖에서 잡아 이 세상에 패대기치는 행위는 분명 결과는 같을지라도 그 과정은 절대 같지 않으며 하늘과 땅 이상의 차이라고 생각하기에 둘을 동일시 하는것은 초대장을 보낸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된다.
인간은 3차원 물질계에 육체를 가진 유기생명체이다. 그와 동시에 프네우마, 우시아, 로고스를 품고 있는 영혼(진리 탐구 메모 참고 https://shearestis.tistory.com/98)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인해 아이의 몸이 만들어지고, 영혼이 인간의 DNA로 만들어진 그 육체에 깃든 것을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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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3차원 물질계에 존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마음이 중요하다’ 라는 식의 물질을 배제한 정신만능론을 펼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물질만 갖춰놓고 풍족하게 해줬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태초부터 빛나고 있는 우리 영혼 속 프네우마, 우시아, 로고스는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랑과 교감이 없이는 그 빛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물질을 어떻게 채워내고 자아는 어떻게 비워낼 것인가?
무작정 채워내고 무작정 싹 다 비워내는 것은 오답일 것이다.
그렇다고 물질을 마냥 무시하고 정신만을 강조하는 것은 폭력일 것이다.
물잘만을 채워낸 뒤 자아를 비워내지 않는 것은 방임일 것이다.
둘 다 채워내는 것은 또다른 폭력일 것이다.
둘 다 비워내는 것은 범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물질의 채워냄
물질을 채워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입에 금수저를 물려주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아이가 물고 태어난 수저가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수저인지, 그 아이가 먹고 사는 걱정을 하며 어린 나이부터 철이 들어야만 하는 삶에 놓이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을 때, 그것을 밀어줄 수 있는 재력을 갖추거나, 알아봐줄 수 있는 눈이라도 갖추라는 이야기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무언가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법 부터 배워야하는 삶 속에 던져놓지 않는 것이 ‘물질을 채워내는’ 일이 아닐까?
자원이라는 이름의 물질이다.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아이를 낳는다고 갑자기 수입이 몇배로 증가하는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제한된 자원을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것 역시 ‘물질을 채워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를 낳기 전 내가 누렸던 즐거운 삶과 각종 취미와 사치 등을 아이가 태어난 뒤에 똑같이 누리는 것 자체가 욕심이 아닐까? 자원은 한정적이니 말이다.
◆자아의 비워냄
그럼 자아를 비워내는 일은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외로움의 무게’에서 말했듯이, 누군가를 이 세상에 초대한다는 것은, 내가 앉아있는 벤치에 함께 앉자고 손짓하는 행위이다. 벤치 한가득 먼저 앉은 부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아이는 앉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부모가 일어서서, 혹은 옆으로 비켜앉아 아이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비워내야만 비로소 아이는 초대받은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 역시 비워냄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 전과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위 ‘물질의 채워냄’에서 말했듯이 자아, 즉 정신을 비워내는 것이 여기에 있다. 아이를 낳는다고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 부모에게만 48시간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 제한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고 그것을 괴로움이나 희생으로 여기는 대신 즐거움과 당연함으로 여기는 것이 자아를 비워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다. 부모의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아 만들어진 몸에 섭리의 인도를 받아 초대장을 들고 그 몸에 깃든 영혼 그 자체다. 칸트의 정언명령에서도 말했듯, 아이를 수단으로 대해선 안된다. 아이는 내가 이루지 못했던 삶, 내가 갖고싶었던 삶, 내가 원하는 것을 대신 이뤄서 내게 건네줄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 아이는 아이만의 삶을 살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으며, 부모는 초대한 이의 삶을 존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자아를 비워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의 영혼이 그러하듯, 아이의 영혼 속에도 프네우마, 우시아, 로고스가 태초부터 깃들어 빛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그를 존중할 것을 간청한다.
아이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되, 아이에게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역시 자아를 비워낸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한 일은 칭찬하되, 잘못된 일은 꾸짖을 것. 하지만 그 기준은 결코 부모의 기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의 기분을 비워낸 훈육이 비로소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작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완벽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를 왜 낳았냐’ 라고 절규하게 만들지만은 말라는 말이다.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 중 제노블레이드(Xenoblade, ゼノブレイド) 게임 시리즈가 있다. 그 게임 속에서 ‘태어나보니 어땠냐’ 라는 질문을 하는 컷씬이 있었다.
태어난 아이가 자신이 부모의 수단으로서 이 세상에 낳음당해 패대기쳐진 자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만들 것인지,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살아와서 좋았던 세상이였기에 엄마와 아빠의 사랑 속에 초대해 이 좋았던 세상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을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는 부모의 몫이 아닐까 한다. 전자는 수단이고 후자는 목적이기에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결과는 같아보일지 몰라도 전혀 같지 않은 결과인 것이다.
낳아줘서 고맙다 소리는 듣지 못할지라도, 왜 낳았느냐 원망을 듣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갈지, 아이를 그저 패대기쳤음에 만족하고 방치할지, 아이의 삶 속에 등불을 들고 부모가 가봤던 길과 아이가 갈지도 모르는 길들을 비춰주는 길잡이별이 될 지는 부모의 선택에 달려있다.
내가 살아보니 끔찍한 세상이였다면, 내게 너무 버거운 삶에 짓눌려 살아왔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줬으면 한다. 남에게 내가 싫었던 일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선한 일이 아니므로.
적어도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희망이라도 갖지 못한 삶을 억지로 그 고사리같은 손에 쥐어준다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초대장을 보낼 권한: 고라니 목장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아이를 잉태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 이것은 아이를 이 세상에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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