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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아이가 주는 행복

흔히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있어.’

 

어떻게 들으면 참 예쁜 말이라고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귀엔 도저히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라니?

아이를 낳은 이유는 아이에게 행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나?

한 남자가 한 여자와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 둘이 살아보니 좋았던 세상에 누군가를 초대해서 자기들이 키워낸 사랑을 나눠주고 이 좋았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초대해서 낳는게 아닌가?

 

아이를 키우는게 당연히 힘들다. 그렇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을 보면 견딜 수 있다고들 하는데, 내게는 그 말이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다.

 

주고 싶어서 낳는게 아니였단 말인가? 내가 살아보니 좋았던 세상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겨난 나의 2세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낳는게 아니였나?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와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평생 아껴주고 싶어서 낳는게 아니였다고?

 

받기 위해 낳는 것인가? 무엇을 받으려고 낳는단 말인가? 무엇을 받고싶어서 낳았다는건가?

기쁨? 행복? 효도? 노후에 보살펴줄 사람? 내가 죽고 난 뒤 내 뒷정리를 해줄 사람?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대신 이뤄줄 존재를 원해서? 나의 외로움을 대신 짊어져주길 바래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게 줄 한 사람을 원해서?

 

위에서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귀찮다. 그러므로 이 글들을 참고하여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 외로움의 무게 https://shearestis.tistory.com/109

 

외로움의 무게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무게를 견디며 고통을 겪고 외로움에 사무치며 살아간다.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선택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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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장을 보낼 권한 https://shearestis.tistory.com/119

 

초대장을 보낼 권한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아이를 잉태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것은 아이를 이 세상에 초대하는 것이다. 남녀는 부부가 되고, 부부는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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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운 자식인 딸, 어려운 자식인 아들 https://shearestis.tistory.com/120

 

쉬운 자식인 딸, 어려운 자식인 아들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한두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독 인상깊게 기억이 나서 써보고자 한다. 엄마가 외출할 때 집에 물건을 하나 놓고온 일이 있었다. 사실 흔한 일이다. 그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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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https://shearestis.tistory.com/117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결혼은 타이밍이다’‘혼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있다’ 흔히들 어른들이나 기혼자들이 해주는 말이다.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그것이 시기에 잘 맞물리면 결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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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력하다.

부모가 보낸 초대장을 받고, 부모가 살던 세상에 부모의 뜻에 따라 이끌려나와 곱게 보내진 초대장을 들고 태어나거나 문 밖으로 뻗어져나온 손에 멱살을 잡혀 세상 속에 패대기쳐진다.

태어나길 원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결정권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손에 들려있다. 초대장을 쓰는 것도 부모, 초대장을 보내는 것도 부모, 문을 열고 아이를 들여보내는 것도 부모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는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고 무한한 사랑을 보내게끔 되어있다. 첫 인상을 보고 저 사람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결정할 수 조차 없는 채로 이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보내오는 맹목적인 사랑을 두고 부모는 어쩌면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위대해서, 자신이 어떤 업적을 이뤘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자신은 살아오면서 이 맹목적인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를 증명했다 여겨서 등등, 아이가 보내오는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당연히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당연시한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라니, 너무 폭력적인 표현이다. 분명 아름답고 반짝여야할 표현인데도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

 

기혼들이 미혼 혹은 비혼인 사람들에게 흔히들 결혼을 권하면서 하는 대표적인 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 ‘아이가 주는 행복’

 

아이를 수단으로 여기는 말이 아닌가? 생명은 도구가 아닌데. 그걸 위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인가? 단지 이걸 받기 위해? 이걸 받아내기 위한 존재를 오직 그걸 받고싶은 마음만 갖고 세상에 초대하는게 맞는걸까?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힘들고 고된 육아를 20년이 넘게 기꺼이 견디는 수많은 엄마와 아빠들이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 인류가 21세기까지 올 수 있었던거겠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하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과 기쁨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아이를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아이를 도구로 여겨선 안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아이가 주는 행복’만을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추천한다.

진심으로 좋은 마음에서 우러난 추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혼자들이 미혼과 비혼, 딩크(Dink)에게 추천하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것은 좋은 마음에서 오는 추천이 아닐때가 더 많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한 결혼생활과 육아를 하고있는 자들은 미혼과 비혼, 그리고 딩크에게 자신들의 삶을 추천하지 않는다. 추천을 하더라도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말해주며, 이것만이 정답이 아닌 것을 알고 대화를 청해온다. 그리고 그들이 간 길과 그들이 가지 않은 길을 동시에 바라보며 상대방의 등을 떠미는게 아닌, 그들이 서 있는 길에서 등불을 들고 두개의 길을 동시에 비춰주고 상대를 존중한다.

 

결혼과 출산을 적극 추천하는 불행한 기혼자들은 대부분 그 등불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온 이 길 옆에 더 좋아보이는 길이 있고, 나는 더이상 돌아가지 못할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부럽고 질투가 나서 미칠것만 같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나아가야만 하는 이 길을 후회하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감추고 싶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울부짖으며 사람들에게 이 길만이 정답이고 너희가 가려는 길은 틀린 길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혼과 비혼, 그리고 딩크인 자들을 수없이 깎아내리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대신 비하하고 폄하하고 하찮게 여기고 미완성인 것으로 여기며 그들을 자신보다 하등하고 열등한 존재, 자기 밑 단계의 무언가로 여기려고 애써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으며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주는 사랑에 안주해선 안된다.

아이가 주는 사랑은 결코 무한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분명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태어나 그 손에 의해 키워지고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으로 나아가며 엄마와 아빠가 아닌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것을 겪고 배우고 자아를 갖춰 한사람의 인간으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뒤를 향해 돌아보며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의 첫 사랑인 두 사람이 내게 준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내가 무한한 사랑을 품었던 두 사람이 과연 이 사랑을 받을 가치와 자격이 있는 자들이였는지.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엄마와 아빠 역시 한 사람의 미숙한 인간이였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고 존경할 부모님이 될 것인지, 나를 이 세상에 패대기쳐놓고 내 사랑을 값싸게 받아가서 당연하게 여긴 존재로 기억될 것인지는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인류 멸망의 6개 상수에 따라 점점 지구는 인류의 낙원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이미 20세기를 끝으로 인류에게 허락된 운명의 시간은 바닥이 나버렸다. 21세기는 생명력이 아닌 관성(慣性, Inertia)만으로 굴러가고 있으리라. 지구의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는 20세기를 끝으로 사라졌으며 로고스(Logos / λόγος)는 종언(終焉, Demise)을 내린지 오래다. 우시아(Ousia / οὐσία)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 인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사랑할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 진리 탐구 메모 속 트리니티 시스템 가설 참고 https://shearestis.tistory.com/98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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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이 의무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최초의 시대를 맞이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한 영혼을 초대해 이 세상에 불러내 스스로의 결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도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으로서 우리에게 누군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하지 않았던가.

 

‘아이가 주는 행복’에 눈이 멀어서 아이를 수단과 도구로 대하지 말아야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불러내는 것의 무게를 절대 잊지 말아야한다.

한번 불러낸 이는 다시 돌려보낼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불러낸 이는 나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그 영혼에 태초부터 빛나고 있는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가 숨쉬고 있는 온토스(Ontos / Ὄντος)를 가졌음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 진리 탐구 메모 속 트리니티 시스템 가설 참고 https://shearestis.tistory.com/98

 

또한 아이가 없음에도 누군가의 비혼, 비출산에 대해 딴지를 걸고 그것을 죄악시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드는 이들이 있다. 기혼자와는 다른 느낌으로 울분에 차 있는 자들이다.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기로 한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경험 속에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을 무작정 비난하고 손가락질 한다. 심지어 그들이 선택한 길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늙어서 후회한다’, ‘나중에 돈 없어서 빌빌거릴거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온갖 비하적인 멸칭들을 갖다붙이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비혼과 비출산을 결정한 여자들이 가임기가 지난 후 10년, 20년 뒤 중년이 된 후의 삶의 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게 혹은 소박하게 누리고 있었다. 후회하는 이들도 비혼과 비출산 자체가 아닌 외로움, 고독, 경제적 문제로 인해 후회를 하고 있었지만 이 문제는 결혼을 한 이들도, 아이를 낳은 이들도 겪는 문제였다. 아이의 유무, 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으며 원래 돈이 없으면 삶은 괴로운 법이다. 정신만능론으로 무장하며 살아가기엔 우리 인간은 3차원 물질계에 소속된 유기체 육체에 깃들어 살아가므로 당연히 물질이 결핍되면 삶이 팍팍한게 정상이니까.

 

이런 연구들이 뒷받침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이들은 대체 무엇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단 말인가?

그들을 향해 악담을 내뱉고 분노를 퍼부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차라리 자신을 가꾸고, 다른 이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구애하여 뜻이 맞는 남녀가 사랑을 키워 하나가 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을 향해 온갖 모욕적 언사를 정성스럽게 쏟아내고 돌을 던져대느냔 말이다.

 

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결혼과 출산을 원치 않을 권리와 자유가 있다.

어떤 길을 갈 지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갈 권리가 모든 이에게 주어진 멋진 세상이 왔음에도 왜 자신의 세상에 갇혀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을 저주한단 말인가?

그런다고 다른 길을 가겠다 선택한 이들이 겁을 먹고 전향이라도 해서 뒤돌아서 그대들이 가려는 길로 뛰어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인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을 부여받았을 뿐이고, 살다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겠다 선택할 수도 있을 뿐이지.

모든 인간이 다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았던 구 시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이런 황금과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결혼과 출산에 얽매이라고 소리높혀 절규하는 것은 스스로가 너무도 비참하지 않은가? 왜 너는 이 길로 와주지 않느냐고 엎드려 흐느끼며 스스로를 바닥에 뒹굴게 하는가? 원치 않는다는 이의 발치에 엎드려 제발 이 길로 와달라고 고개를 조아리고 바짓가랑이를 잡는 스스로가 가엾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를 내던지기에는 그대 영혼 속에 태초부터 빛나고 있을 터인 프네우마, 우시아, 로고스가 그 빛을 잃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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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주는 행복: 고라니 목장

흔히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있어.’ 어떻게 들으면 참 예쁜 말이라고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귀엔 도저히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주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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