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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농담으로라도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아무튼 해줘.”

“몰라, 그냥 해줘”

“그냥 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줘.”

“아무 노력 없이 갖고싶다.”

“노력 없이 이기고싶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썩 좋은 말들은 아니다.

여기 미처 적지 못한 변화구들도 수없이 많다. SNS나 인터넷 검색창에 ‘해줘’ 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수두룩하게 나올 것이다. 21세기의 인간들은 20세기 이전의 구시대와 다르게 왜 이렇게 나약하게 변해버린 것인가. 진짜 내 진리 탐구 메모 속 가설들처럼 20세기를 끝으로 지구에 허락된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가 사라지고 관성(慣性, inertia)만 남아 움직이고 있기라도 한건가? 끔찍한 발상이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사실 쪽에 내 마음 속 무게추가 계속해서 기울게 된다. ※<진리 탐구 메모 https://shearestis.tistory.com/98> 참고

 

진리 탐구 메모

트리니티 시스템 (The Trinity System: Providence)이건 어릴적부터 내가 감으로 느껴오던 것을 2025년 12월 4째주 일주일 내내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가 할 일이 없어서 대충 끄적여 언어화한 낙서임.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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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언가를 바람과 동시에 그것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는 것을 피곤해하고 꺼려한다. 그리고 그 ‘노력’이라는 것의 가치가 어느순간부터 조롱의 대상이자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되었다. 무엇이 노력이라는 단어를 깎아내린 시대를 만든 것일까?

 

노력이 항상 보답받는 것만은 아니다.

분명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다르고, 재능이 있는 자는 즐거운 노력을 하기에 재능이 없는 자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재능이 없다면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재능이 없는 자가 노력으로 재능이 있는 자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면 그건 그에게 재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뒤늦게 피어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든 노력이 항상 보답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며 누군가가 무언가를 가지고 성취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는 그토록 원한 무언가를 얻을 수 없는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다만 정말 원한다면 노력이라도 한번 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꼰대처럼 말하려는건 아니다. 나도 2026년 현재 기준으로 꼰대라고 불리기엔 젊은 나이이므로 감히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덧붙여본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하다못해 게임을 하면서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면 내가 졌던 게임의 판을 복기해서 왜 졌는지 스스로 분석하고,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의 유튜브 강의나 블로그 글 같은것을 찾아보며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스크린샷을 찍고 클립을 따서 분석글을 쓰고, 실내용 자전거 위에서 운동을 함과 동시에 갤럭시탭에 화면분할 기능을 이용해 왼쪽에는 일본어로 된 스플래툰 랭커의 영상을 켜놓고 오른쪽엔 노트필기 앱을 이용해 운동을 하며 매일같이 필기를 하고 전략을 연구하곤 했다. 그에 따라 내 노력이 고맙게도 보답을 받았고, 지금은 잘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고래들 사이의 새우처럼 매일같이 터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노력하는 것이 싫지는 않기에 힘들기는 하지만 좀 더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밤 욕심을 부리고는 한다.

그림도 그렇다. 잘 그리는 사람, 자기만의 색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멋진 재능이 있다. 그와 같은 거인들을 올려다보면 내가 가진 것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고 만화를 그리는게 즐겁기에 포기하지 않고 싶다. 포기라는 말도 좀 이상한거 같다.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잘하던 못하던 그냥 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에 백업을 하며 즐기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

 

모든것이 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에 남을 한 획을 그으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언가를 얻고싶다는 마음이 생겼을때 그 마음을 놓치지 말고 움켜쥐려고 해보자는 생각이다.

남에게 이 마음을 강요하려는 것은 또 아니다. 그냥, 내가 수없이 많은 인생 속 좌절들을 겪으면서 무언가를 얻을거란 보장은 없을지언정 하늘의 별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고 손을 뻗어올리고 까치발을 들면서 가진 마음 속 작은 빛이 곧 하늘의 별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 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하늘의 별을 갖고싶다고 말하는 것과, 비록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하늘의 별을 원하는 마음을 꺼내놓는다면 그 별이 아닐지라도 내 가슴속에 저 별과 같은, 혹은 저 별보다 가치있는 빛이 반짝이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영혼 속에는 태초부터 빛나고 있는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 우시아(Ousia / οὐσία), 로고스(Logos / λόγος)가 잠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진리 탐구 메모 https://shearestis.tistory.com/98> 참고

 

21세기의 사랑 또한 이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지만 귀찮으니까 전에 써놓았던 <사랑의 형태 정리 https://shearestis.tistory.com/99> 글을 토대로 오늘의 일기를 써보고자 한다.

 

사랑의 형태 정리

사랑의 4단계 위계1. 최선의 사랑 • 정의: 서로가 서로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등을 맞댈 수 있는 전우/파트너.• 특징: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무언가를 해주는 것에 대해 손해라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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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의 시대라고 사랑이 흔한건 아니였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나이가 차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사회적 강요에 따라 누구든 개나 소나 결혼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상류층은 정략결혼이 일반적이였고 일반인들은 중매결혼을 하곤 하였다. 물론 그 속에서 결혼 전부터 인연을 맺어서 연애를 하고 뜨거운 사랑 끝에 아름다운 결혼에 골인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그렇기에 역사 속에 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기록에 남아 후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그것을 여전히 간직하는게 아닐까? 아마 사랑이란거 자체가 흔한건 아니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사랑'에 열광하고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을 노래하고 찬미하는 것이 아니였을까?

많은 이들이 조선(朝鮮)의 왕 정조(正祖)가 의빈 성씨(宜嬪 成氏)에게 품었던 애절한 사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아내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사랑과 그리움에 타지마할을 지었던 무굴 제국의 샤 자한(Shah Jahan)과 그의 아내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이야기에 따라 타지마할(Taj Mahal)을 방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몰해가는 타이타닉 호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지키고, 하녀에게 자신의 모피코트를 입혀주며 함께 마지막을 맞이했던 이시도어와 아이다 스트라우스 부부(Isidor & Ida Straus)를 사람들은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neither can the floods drown it.)' 라는 아가 8장 7절의 격언을 인용해 애도하였다.

피에르와 마리 퀴리 부부(Pierre & Marie Curie)의 업적은 분명 그들의 뛰어난 재능과 그것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지탱해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믿는다.

 

 21세기도 그런게 아닐까 한다. 

사랑은 흔하지 않다. 여전히 사랑은 흔한 것이 아니다. 20세기 이전의 시대들과 같이 사랑은 언제나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같으며 녹음이 우거진 드넓은 숲과 들 같은 것이다. 저 하늘에서 혼자 대낮을 지배하는 태양과 같이 뜨겁고 감히 쳐다보기에 눈이 멀 정도로 눈이 부신 것이다.

 

사랑을 원하는 본능에 이끌려 많은 연애프로그램과 연애서적, 연애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사랑을 테마로 하는 드라마와 음악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을 원함에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호감)을 품었을 때 그것을 상대방에게 내보이기를 주저한다. 시대가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게 만들고, 누군가의 진심을 폄하하게 만드는 세상이 와버린 것이다.

글 길게 쓰기 귀찮으니 내가 예전에 쓴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https://shearestis.tistory.com/117> 참고해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사랑을 사칭하는 시대

‘결혼은 타이밍이다’‘혼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어있다’ 흔히들 어른들이나 기혼자들이 해주는 말이다.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그것이 시기에 잘 맞물리면 결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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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이성이 생겼다고 무작정 들이받는건 노력이 아니다.

상대방에게도 세상을 보는 눈이 있고 생각할 줄 아는 머리가 있다. 상대방에게도 살아온 세월과 가치관에 따른 취향이라는게 있다.

사랑은 ‘가슴은 불타오르듯 뜨겁게, 머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해야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며 그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외모라는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본선진출권을 얻어서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다가간다. 행운이 따라준다면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호감을 품을 것이고 그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썸(seeing someone)’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고백을 하고 연애를 할 수도 있을것이고, 더 발전되면 결혼에 골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노력이 곧 사랑의 보답일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기에, 내가 품은 감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답을 줘야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권리라면 거절하는 것도 권리인 것이다. 무조건 ‘해줘’ 마인드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작게는 트러블, 크게는 사회문제나 범죄로 발전하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마음이, 사랑이, 꼭 상대방에게 있어 아름답고 고마운 것으로 보이지만은 못한다. 때로는 나의 마음이, 사랑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고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그것이 싫다면 예선전에 통과하고 본선전에 진출하기 위해 고민하고 시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 말했듯 모든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는건 아니다. 이와 같이, 사랑 역시 무조건적인 보상이 될 수 없다. ‘사랑을 하는 나’ 혹은 ‘사랑에 빠진 나’에 취해있으면 사랑을 얻기위해 노력할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직시하지 않으면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할지조차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싶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아도 좋다.

하늘의 별을 바라만 보고 싶다면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다.

하늘의 별을 발견했지만 향해 손을 뻗지 않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하지만 하늘의 별이 갖고싶어 미칠 것 같으면 뭐라도 해봐라. 하늘의 별이 내게 당장 떨어져 내려오지 않는다고 별을 향해 욕을 하지 말고, 옆에서 그 별이 갖고싶다고 폴짝대며 노력이라도 하는 이를 폄하하지도 말라는 소리다.

 

고(故)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 "바뀌지 않을거면 남 뒷다리라도 잡지 마라" 고.

정확히는 “강제 안한다. 자율이다.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서 많이 기여해.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서 적게 기여해.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 라고 했다.

기업 경영자가 한 말이다만, 단지 기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모든 시대를 관통할만한 위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노력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조선시대 장영실(蔣英實)은 관기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관노의 출신으로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치세 아래에 위대한 기술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에픽테토스(Epictetus, ἐπίκτητος) 역시 노예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노예이지만 스토아 학파의 영원한 기둥 중 하나로 남았지 않은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제본소에서 일하며 주워읽은 책의 지식을 활용해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소피 제르맹(Sophie Germain)은 시대적 한계에 따라 여자라는 틀에 갇혔을지언정 수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밤마다 옷과 책을 빼앗겼을지언정 몰래 이불과 촛불에 의지해 수학을 향한 열정을 불태운 수학자의 별이였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나고자 노력하여 위대한 거성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잘났다는건 아니다. 나도 미숙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걸 알고 여기서 멈추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 죽을때까지 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대지 않을까 한다.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원하는 별들은 수없이 많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채 100년도 되지 못할테니까.

그럼에도 그 별을 바라보고 손을 뻗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 믿고싶다. 그 마음이 내 삶에 반영되길 바라며 오늘도 손을 뻗어본다.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10년 뒤에도, 만약 있다면 다음 생에서라도 손을 뻗어 언젠가는 닿고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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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만 남고 의무는 내팽개친 시대: 고라니 목장

농담으로라도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아무튼 해줘.” “몰라, 그냥 해줘” “그냥 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줘.” “아무 노력 없이 갖고싶다.” “노력 없이 이기고싶다.” 듣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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