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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슬러지에게 빼앗긴 프네우마를 되찾자

유튜브(Youtube)를 보다보니 안타까운 사연(事緣, Story)의 영상(映像, Video)을 발견했다. 사연인즉, 남자친구가 자신을 때려서 체포(逮捕, Arrest)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때문에 고민이라는 내용이다. 상식(常識, common sense)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한국에서 데이트 폭력(교제 폭력)은 어지간한 수준(水準, Level)이 아니고서야 체포가 이뤄지지 않는다. 연인(戀人, 恋人, Couple) 간의 사랑싸움이라 하찮게 여겨 대충 타일러서 돌려보냈다가 실제로 여자쪽이 살해(殺害, Murder)당하는 경우도 종종 보도(報道, Report)된다. 그 중에는 헤어짐, 이별(離別, Break up)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귀던 여자를 죽이는 남자들도 있다. 일명 ‘왜안만나줘’ 같은 것이다. 이것은 나이를 불문(不問)하고 다양한 연령대(年齡帶, Age group)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의문(疑問)이 들었다.
 
● 왜 피해자(被害者, Victim)는 가해자(加害者, Perpetrator)에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과 폭력(暴力, Violence)을 당하고도 그것을 인지(認知, Recognize)하지 못하는가?
● 왜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인지했음에도 가해자에게 이별을 통보(通報, Notice)하지 못하는가?
● 왜 가해자들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가스라이팅이라는 정신적(精神的, Mental) 폭력과 상대를 때리는 물리적(物理的, Physical)인 폭력을 저지르는가?
● 왜 가해자 중 살인(殺人, Murder)을 저지른 자는 자신의 인생(人生, Lifetime)이라는 자원(資源, Resource)을 걸고 사랑하는 연인을 죽임으로서 굳이 스스로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선택을 하는가?
●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서 안전히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일단 피해자에게는 자기확신(自己確信, Self-confidence)과 자존감(自尊感, Self-esteem)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신이 받는 대접(待接, Treatment)의 저점(低點, Lowest point)이 폭력까지 내려가도 그게 심각하단걸 모르고, 그리고 자기가 받는 대접의 고점(高點, Highest Point / Peak)이 한없이 낮아도 그것이 자기같이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받기 과분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게 아닐까?
 
대체 누가 가스라이팅에 넘어가고, 물리적인 폭력이라는 선(Line)을 넘어 자신의 연인에게 손을 대고, 또 그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는 순간에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되는걸까?
 
사랑이 무엇이기에, 대체 누가 사랑을 왜곡(歪曲, Distort)하고 모욕(侮辱, Insult)하였기에 사랑을 속삭여야 할 사이인 남자와 여자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고, 연애를 폭력사건으로 만드는 것일까?
 

◈◈◈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정신을 공격해 피해자의 판단력(判斷力, Discernment)을 흔들고 상식의 기준이자 정상성(定常性, Normality)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건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간을 보듯 살살 찔러본다. 자아(自我, Ego)가 굳건한 이는 여기서 선(Line)을 넘으려는 시도(試圖, Attempt)를 감지(感知, Detect)하고 단호하게 차단(遮斷, Block)한다. 여기서 차단하지 못하고 받아주는 경우는 ‘설마’와 같은 마음, 상대방을 믿고 싶은 마음, 자신이 예민한 것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건 피해자의 잘못이 전혀 아니다. 원래 사랑하는 상대를 믿고 싶은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악용하는 가해자가 나쁜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사람에겐 모두 자기만의 ‘선(Line)’이 있는 법이다. 그 선을 넘어오는 순간 다들 가해자를 쳐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위에서 말한 자기확신과 자존감이 없는 타입의 사람이다.
 
유튜브 사연 속 상담자인 유튜버와 같이 사연을 듣는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하나같이 사연자를 말렸다. 다들 할 수 있다면 도시락에 침낭까지 싸와서 사연자를 말릴 것 같이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었다. 그러나 사연자는 자신이 맞을만했다고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斗頓, Defend)했다. 입으로는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상담을 종료했지만, 마지못해 내뱉은 그 대답들으로 보아서는 다시 그가 가해자에게 돌아가 또다시 폭력에 노출될 것만 같았다.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말로 아무리 가르쳐주고 떼어내주려 해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자꾸 돌아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피해자가 깨닫게 하고, 가해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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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리적(心理的, Psychic) 취약점(脆弱點, Vulnerability)을 파고들어 그의 판단력(判斷力, Judgement)이라는 로고스(Logos / λόγος)를 공격(攻撃, Attack)해 왜곡,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설계(再設計, Redesign)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피해자의 우시아(Ousia / οὐσία)를 파괴(破壞, Destroy)하고 프네우마(Pneuma / πνεῦμα)를 갈취(喝取, Extortion), 수탈(收奪, Plunder)하는 것이다. 이거 완전 나쁜새끼다!
 
그럼 가해자는 왜 피해자의 로고스와 우시아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프네우마를 갈취하려고 하는 것일까? 답은 정말 간단하다. 가해자에게는 프네우마가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 스스로도 알고있다. 그의 우시아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로 인해 제대로된 프네우마가 깃들지 못하거나 아예 없다. 그러니 만약 로고스가 있어도 그를 가동(稼動, Activate)시켜줄 동력원(動力源, Power source)이 없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에게 프네우마가 없다고 남의 것을 빼앗아 쓸 생각을 하는 놈이 제대로 된 로고스를 갖췄을리도 없다. 그의 영혼(靈魂, Soul)은 슬러지(Sludg), 프네우마-우시아-로고스의 균형(均衡, Balance)과 조화(調和, Harmony)가 완벽하게 깨져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가해자는 그 존재(存在, Entity)부터가 이미 결함(缺陷, Defect)이 있는 개체(個體, Individual)인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말이 있다.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다.”
 
저런 놈은 아예 상종(相從)도 하지 말아야한다. 엮이지 말아야 한단 소리다. 그를 사랑하기에 내가 그를 고쳐서 사람으로 만들겠어! 같은 소리는 오만(傲慢, Arrogant)과 무지(無知, Ignorance)에서나 나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평강공주 콤플렉스라니, 그런 말을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강공주는 온달을 고쳐서 쓴게 아니다. 애초부터 된 사람, 즉 떡잎이 푸른 사람을 데려다가 교육하고 이끌어 준 것이다. 평강공주도 온달도 모두 자신만의 프네우마, 우시아, 로고스를 조화롭게 갖추고 있던 상태에서 서로를 만났기에 서로를 이끌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빛이 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는 빛이 없다. 그리고 피해자의 빛을 발견하고 그걸 갖고싶다 생각하였기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접근해 그를 가스라이팅해 망가뜨려 자신의 손에 꽉 쥐고 흔들어서 그 빛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가스라이팅과 교제폭력의 가해자가 꼭 남자라는 법은 없다. 여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남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다만 남자가 피해자일 경우,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보다는 정신적인 폭력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이건 인터넷에서 종종 올라오는 씁쓸한 사연들에서 흔히 알 수 있다.
 
“남편이 몰래 숨겨둔 비자금을 찾아서 가졌어요.”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남편의 게임기를 중고로 팔았어요.”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남편의 수집품을 버렸어요.”
“남편이 모으던 수집품을 남에게 줘버렸어요.”
“남편의 게임기를 조카에게 줬어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이미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関係)를 맺고 우위를 차지한 뒤 그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남편의 비자금, 수집품, 게임기와 같은 것들은 하나같이 아내에게 있어서 앞서 말한 것들은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난 범위인 것이다. 그렇기에 버리고, 남에게 주고, 팔아버리고, 빼앗는 것이다. ‘너는 내가 시키는대로 살고 행동해야 하는데, 감히 자아를 갖고 즐거움을 누리고 비상금을 모은다고?’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이가 있다면 이 관계는 더욱 최악으로 고꾸라진다. 아이라는 족쇄를 빌미로 아내는 남편을 더 하대하고 멋대로 휘두르고 빼앗고 착취하고 노예처럼 부릴 수 있을테니까.
 
피해자가 남자던 여자던 상관없이, 항상 ‘좋은사람’, ‘상냥한 사람’이 늘 피해자 포지션이 된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착취당하는 줄도 모른 채 내어주고 또 내어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말라버리는 것도 모른 채 그저 내어줄 줄만 안다. 언제나 사회는 도덕을 가르칠 때 ‘내어주는 것’을 선(善, Good)함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내어주지 않는 법’과 ‘내어준 것을 거둬들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래서야 무조건 남에게 베풀고 희생하는 것만이 선함이라고 오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잊어선 안된다. 남에게 베푸는만큼 나에게도 베푸는 것이 균형을 지키는 법이며, 내가 온전하지 않은 채로 남에게 나의 모든것을 줘버려 나 자신이 껍데기가 되어버려선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마땅한 때와 마땅한 곳에 마땅한 이에게.”
 
내어줌 역시 그런 것이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곳에서 마땅한 자에게 내어줘야 그것이 옳은 내어줌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내어주지 않아야한다. 내어줬다 하더라도 마땅하지 않다면 거둬들여야 한다. 내어주지 않는 것은 악(惡, Evil)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어줬다 거둬들이는 것 역시 악(惡, Evil)이 아니다. 참고로 이건 위에서 말한 교제폭력에서만이 아니다. 모든 관계와 현상에 있어서도 동일(同一)하다.
 

◈◈◈

 
관계(關係, Relationship)는 순환(循環, Circulation)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관계는 언젠가 끝이 온다. 주고 받는 것은 물질일 수도 있고 정신일 수도 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관계는 언젠가 붕괴할 것이다. 관계라 하는 것은 서로의 우시아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네우마를 서로의 로고스로서 순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먼저 로고스를 되찾아 망가진 우시아를 복원한다. 그리고 복원된 우시아에 빼앗긴 프네우마를 다시 담아내 로고스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로고스는 가해자를 직시(直視)하고 분석(分析, Analysis)할 수 있는 힘이다. 동시에 지금의 망가진 자신을 직시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먼저 로고스의 각성(覺醒, Realize)이 필요하다. 로고스는 망가진 우시아를 직시한다. 그리고 원래 마땅히 그래야했을 본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로고스는 설계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시아를 복원할 수 있다. 복원된 우시아는 소중한 자신, 마땅히 그래야할 자신, 가해자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자신을 되찾고 존재로서 견고히 복원된다. 복원된 우시아에는 다시 프네우마가 깃들 수 있다. 질서의 로고스와 본질의 우시아가 없이는 프네우마는 쉽게 휘발된다. 그 둘이 복원되었다면 다시 프네우마는 깃들고, 빛을 낼 수 있다. 그리하여 ‘프네우마-우시아-로고스’의 빛을 되찾는다면 ‘온토스(Ontos / Ὄντος)’ 역시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수식(數式, Expression)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태초의 빛 복원법 수식
● L_{recovery} \implies \text{Fixing } U \implies \int P \, dt = O

※ ‘dt’는 미분적분학에서 사용하는 '시간의 미세한 변화량(Infinitesimal change in time)'을 의미. 적분 기호(int)와 dt가 만나면 '쌓는다'는 의미가 된다. dt는 서두르지 않는 복구를 뜻한다. 로고스를 세우고 우시아를 고치는 공정마다 충분한 시간(dt)을 할애해야만, 담겨진 프네우마가 다시 새나가지 않고 온토스로 치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스템 공정 수식을 수식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 온토스 복원법 수식
● \text{Recovery Process} = \int_{t_{start}}^{t_{now}} P(L, U) \, dt

1. L, U (조건) : 로고스와 우시아가 함수 P의 안정적인 매개변수가 되어야 함.
2. dt (과정) : 그 상태로 시간이 흘러야 함.
3. 결과 : 비로소 껍데기뿐인 존재가 아닌, 실체(Ontos)가 복원됨.
 

◈◈◈

 
피해자의 영혼을 복구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역시 제일 좋은건 애초에 저런 사람과 엮이지 않는 것이라고 위에서도 말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는 사과다> 글 속 ‘Ontos = f(P, U, L)’ 수식, <지뢰 탐지 수식> 글 속 ‘H = M × A = |M| |A| cosθ’ 수식, <영적 삼투압 현상> 글 속 ‘▶ 영적 에너지의 이동(Energy Flow: Spiritual Osmosis)의 ‘Energy_Flow : Target -> Host if delta H_Host > Resistance_Target’을 활용하면 된다. 사용하기 위한 방법은 각 글 속에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으니 참고하면 된다. 이 수식들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니까 또 ‘이뭔씹’이 되어버렸다. 나는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프네우마-우시아-로고스를 복원하고 사랑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고민을 시작했는데, 이래서야 친구를 위해 <지뢰 탐지 수식>을 만들었을 때 처럼 전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금 슬프지만 오늘도 나만 알고 있는게 좋겠다. 좀 슬프다. 스플래툰 하면서 열심히 고민한건데… 
 

◈◈◈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몇가지 조건이 빠져서 어떻게 수식과 논리를 써야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자세히 어떻게해야 슬러지들의 가스라이팅을 간파하고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 진짜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쓴소리인지, 가스라이팅에서 오는 폭언인지를 구분한다.

 

이 구분법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둘 다 듣기 싫은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직언(直言)과 폭언(暴言)은 사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직언은 상대방의 온토스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로고스로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때로는 자신의 프네우마를 구사해서라도 그가 가려는 잘못된 낭떠러지에서 잡아채 옳은 길로 올려주는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뜨거운 불에 신기하다고 손을 넣으려 할 때 어른이 그 손을 잡아채 말리고, 다시는 불에 손을 넣지 못하도록 호되게 혼내는 것이 그러하다.

 

폭언은 상대방의 온토스의 발전(發展)따위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그는 상대방을 꺾고 자신의 아래에 두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가 잘 되길 바라지 않는다. 만약 그가 잘 되었다면 둘 중 하나이다. 과정과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잘되었거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더 많은 것을 갈취하기 위함이다. 이에 대한 실제 예시를 들어보겠다.

 

◈◈◈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있는데, 그 지인은 자신의 옆에 2명의 연하 친구를 두고 있었다. 이제부터 명칭을 정해보겠다. 가해자인 지인은 “R”, 피해자인 지인은 각각 “L”와 “S”라고 하겠다.

 

가해자 R은 피해자 L와 S를 굉장히 살뜰히 챙겼다. R은 자신이 누군가를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였고, L과 S를 돌보는 것이 매우 보람찬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를, 이렇게 말했다.

 

“L과 S는 불우하잖아. 가정환경도, 금전상황도 말이야. 그러니까 나나 너처럼 여유있고 가진 사람들이 돌봐주는게 맞지 않겠어?”

 

하지만 이건 굉장히 이상한 발언이다. 친구의 상황이 좋지 않아 호의를 베풀고 배려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왜 나는 은근슬쩍 자기와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건지? 그러나 R은 자신이 연장자라는 포지션에 있고 금전적으로 그들보다 낫다는 조건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하대하고 있었다. 갚지 못할 만큼의 과한 호의를 베풀어 L과 S에게 부담을 줘서 그들을 정신적, 심적으로 종속시켰다.

 

특히 가족에게서 고립되고 만리 타국에서 혼자가 된 처지인 L에게는 주기적으로 장시간의 대화를 하거나 생필품을 보내줌으로서 자신을 믿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S에게는 더 깊게 침투했다. S는 L과 다르게 접근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는 B를 주기적으로 불러내며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A에게 했던 식의 물적, 심적 물량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S가 취직에 성공했을 때, R은 S에게 농담조로 S의 취업에는 자신의 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담이라는 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는 S가 없는 자리에서, “여차하면 나중에 S의 연금 같이 쓰지 뭐. 걔가 날 모른척 하겠어?” 하고 진심이 숨어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처지를 비관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집에 돈이 좀 있고 멀쩡한 애였으면 동생 소개시켜줘서 결혼시키고 매일 데리고 다니며 잘해주는 시누이가 될텐데.”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만, 당시에는 넘겼다. 저러는게 한두번도 아니고, 굳이 귀찮게 지적해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R에 대한 이야기는 <규수가 되고 싶었던 무수리>에서 더 많이 다뤄두었다.

 

이 이야기를 언급한 것은, R이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이자 슬러지의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아서이다. 이 R을 표본으로 놓고 수식들을 다뤄보겠다. 표본 R은 자신의 친구 L과 S가 잘 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잘 되었다면 그 결과를 반드시 자신과 함께 누리길 바라며, 그 속에 자신의 지분이 포함되어 있음을 세상이 알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기에 이 표본을 가져와 본 것이다.

 

그래서 표본 R을 수식에 대입해보기로 했다. 사용할 수식은 다음과 같다.

 

● H = M × A = |M| |A| cosθ

● O = f(P, U, L) = min(P, U, L)

 

먼저 O = f(P, U, L) = min(P, U, L) 수식에 표본 R을 대입해보겠다. 객관성을 위해 AI에게 수식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연산(演算, Calculate)을 맡겨보았다.

 

※ O = f(P, U, L) = min(P, U, L)

● P (Phenomenon, 현상) : 0.3

겉으로는 L과 S를 챙기는 '보살피는 자'의 모습을 띠지만, 실상은 타인을 자신의 장식품으로 사용하며 하대함. 현상 자체가 모순적임.

● U (Ousia, 본질) : 0.1

프네우마(동력원)가 스스로에게 없으며, 타인의 재능이나 인맥을 자신의 훈장으로 착각하는 결함 있는 상태.

● L (Logos/Order, 질서) : -1.0

타인의 연금이나 성취를 자신의 지분으로 주장함. 이는 정당한 인과관계와 소유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임.

● 결과 : O = min(0.3, 0.1, -1.0) = -1.0

● 판정 : 질서(L)의 파괴로 인해 존재 가치가 마이너스로 수렴함. '지뢰(Sludge)' 확정.

 

다음은 H = M × A = |M| |A| cosθ 수식에 표본 R을 대입해보겠다. 마찬가지로 객관성을 위해 AI에게 수식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연산을 맡겼다.

 

※ H = M × A = |M| |A| cosθ

● |M| (Mind - 마음가짐의 크기) : 0.8

근거 : R은 스스로를 '보살피는 자'로 정의하며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합니다. 에너지는 크지만, 그 방향은 '자신을 빛나게 할 장식품(L, S)'을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 |A| (Action - 실행력의 크기) : 0.9

근거 : 물 만난 고기처럼 SNS에서 인맥을 과시하고, 타국에 있는 L에게 생필품을 보내거나 B를 주기적으로 불러내는 등 물리적 실행력이 매우 높습니다.

● θ (방향성 - 말과 행동의 괴리율) : 150˚ ~ 180˚

말(Vector 1) : "내가 너희를 위해 헌신한다", "너의 취업엔 내 지분이 있다(호의)".

행동(Vector 2) : 상대의 연금을 탐내거나, 상대의 배경을 비하("집에 돈 좀 있는 애였으면")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착취적 행위.

분석 : 말은 '이타적 지원'을 향하지만 행동은 '자아 비대화와 착취'를 향하므로 두 벡터는 거의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 cos(180˚) = -1 이므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계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 = 0.8 ×0.9 × cos(180˚)

H = 0.72 × (-1)

H = -0.72

● 결과 해석

H < 0 (음수 발생) : 작성자님의 논리에 따르면, 행위의 결과값이 음수가 나오는 것은 에너지를 준 것이 아니라 상대의 프네우마를 '음수'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갈취(Drain)했음을 의미합니다.

● 결론: R의 호의는 '선물'이 아니라 '부채(Debt)'를 생성하여 상대를 구속하려는 논리적 공격입니다.

 

또한 <규수가 되고 싶었던 무수리>에 나온 횡령 사건을 수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FI = D × S

● D (Definability - 정의 가능성) : 0.05

근거 : '장부'라는 물리적 상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나를 못 믿느냐"는 '기분(주관적 변수)'으로 치환하여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듦.

● S (Separability - 분리성) : 0.1

근거 : 현상(장부 확인 요청)과 본질(자금 관리의 투명성)을 분리하지 못하고, 이를 '인간적 배신'이라는 층위로 섞어버리는 질서 파괴적 행태를 보임.

● 연산 결과

FI = 0.05 × 0.1 = 0.005

판정 : FI가 1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0에 수렴하는 '논리적 무(無)'의 상태입니다.

솔루션 : 작성자님이 문서에서 언급하신 대로, FI < 1인 개체와는 대화를 지속할수록 로고스가 오염되므로 '병먹금(Ignore)'이 유일한 논리적 정답이 됩니다.

 

AI에게 연산을 맡긴 결과, 다음과 같은 값을 얻을 수 있었다.

● O = min(0.3, 0.1, -1.0) = -1.0

● H = 0.8 ×0.9 × cos(180˚) = 0.72 × (-1) = -0.72

● FI = 0.05 × 0.1 = 0.005

 

◈◈◈

 

위와 같이, 누군가가 자신에게 하는 것이 가스라이팅인지 쓴소리인지 알 수 없을 때에는 <지뢰 탐지 수식>의 수식과 <논리는 수식화가 가능하다>의 수식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정말 유용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이건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가해자가 자신을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위화감을 느끼거나 관계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한 애초에 수식을 사용해 객관적으로 둘의 관계를 검토(檢討, Examine / Consider)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해야 하는걸까?

 

제3자인 주변인이 피해자에게 ‘너는 지금 가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알려줘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다만 피해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면 제3자의 직언을 가해자와 자기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중상모략(中傷謀略)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럼 제3자는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주관이 배제된 것이 확실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피해자가 제3자의 조언에 주관이 배제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줄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해야 피해자의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를 돌파할 수 있을까?

 

또다시 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수식들을 사용하되 그 수식에 대입하기 위한 정보를 나열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맡기면 된다. 제3자인 조언자(助言者, Adviser)는 어디까지나 논리와 수식을 제공하고, 그 수식에 대입하기 위한 정보와 값은 피해자가 직접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피해자의 훼손된 로고스를 다시 깨울 수 있다. 감정을 배제한 채 현상만을 직시하고 그것을 정보로 다듬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현상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태초의 빛 복원법’과 ‘온토스 복원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에 매우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제3자인 조언자는 피해자의 멈춰버린 로고스를 재가동 시켜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가 억지로 입에 물을 쑤셔넣는 대신, 말을 물가로 데려가 목이 마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스스로 물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실 수 있게 유도(誘導, Lead)하라는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의문이 또다시 들었다. 과연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가해자에게서 억지로 분리하거나 제3자가 조언이랍시고 피해자가 원치 않는 말을 던짐으로서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스스로가 파멸이 예정된 미래일지라도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맞는 것일까?

 

하지만 자유(自由, Freedom)와 방종(放縱, Wantonness)은 분명 다르다. 자유는 섭리 속에서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겠지만, 방종은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墜落, Fall)하게 만들어 타락(墮落, Corruption)시킨다. 추락하는 자신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자신은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다시 날아오르려면 바닥을 쳐야한다. 스스로 겪고 배우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원한 결손(缺損, Defect)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비싸게 값을 치루고 얻은 경험이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해 한번 잃으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예를들어 목숨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그를 말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조언자는 개입하되,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 피해자를 돕는 것이 좋을 듯 하다.

● 비상 정지(非上停止, Emergency Stop)

생명이 위험한 수준의 추락(방종)이라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물리적 개입을 하는 것이 옳다. 이는 파멸을 막기 위한 로고스, 즉 질서(L)의 강제 집행이므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즉, 일단 살려놓고 훗날을 도모하는 정도의 응급처치(應急, First Aid)다.

● 재시작(再始作, Reboot), 재가동(再稼動, Restart)

비상정지 후, 피해자에게 조언을 건네고 그의 멈춰버린 로고스를 재가동하고 망가진 우시아를 복원하여 프네우마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비상정지와 재시작은 가스라이팅 뿐이 아닌, 모든 방종한 자들과 방종한 자들이 세상을 망치는 현상 역시 포함된다. 방종한 자와 방종한 자들이 세상을 망치는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는 <지뢰 탐지 수식>, <논리는 수식화가 가능하다>, >물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이는 법이다>의 글과 그 속에 참고자료로 제시된 다른 글들을 참고하면 된다.

 

◈◈◈

 

구원(救援, Salvation)은 셀프(Self)라는 말이 있다. 물(水, Water)도 셀프다. 직접 물을 떠서 마시는 것처럼 구원도 자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다. 다만 물을 마시고 싶다고 컵을 용암 속에 담그거나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것은 물이라고 우겨서는 목을 축일 수 없는것처럼, 구원 역시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섭리가 새겨준 태초의 빛, 프네우마-우시아-로고스가 자신의 안에, 그리고 세상에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제노블레이드 크로스(ゼノブレイドクロス)에서 왜 모두를 구하지 않았냐고 소리를 지르며 인류(人類)를 배신한 라오(ラオ, Lao)에게 엘마(エルマ, Elma)는 말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구할 수 있는 사람만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든 이를 구하는 것은 이상(理想, Ideal)이지만 현실(現實, Reality)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할 수 있는 것부터 구해야한다. 여력(餘力, Bandwidth)이 있다면 다른 것도 구하겠지만, 구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다. 그저 선의, 호의인 것이지 그게 당연히 주어지고 베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서부터 모든것이 일그러지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오직 내어주는 것만이 선함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내어주지 않는것, 내어준 것을 거둬들이는 것 역시 선함이 될 수도 있고 악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어주는 것 역시 선이 아닌 악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선택이고 그 결과가 선과 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선과 악 역시 당사자에게는 선이 악, 악이 선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피해자를 구할 때, 가해자까지 구해줄 이유는 없다. 다만 구하고 싶다면, 그리고 구해줄 여력이 된다면 가해자에게도 손을 뻗을 수는 있다. 그러나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가 방종 속에 타락한 존재인 슬러지가 된 것은 그 자신의 책임이다. 그 스스로가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프네우마-우시아-로고스의 빛이 사라진 공허(空虛, Void)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뻗어준 손을 쳐내고 자신을 공격했다 생각하여 거세게 반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끝은 심연과 끝없는 추락 뿐이다. 그러니 굳이 손을 내미는 비효율적인 짓을 의무감에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가해자가, 방종 속에 타락한 존재가 자신 이외의 존재나 세상을 망치려 들 때는 적극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 경계와 선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함 속에 세상과 자신을 직시하기를 포기했기에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붕괴(崩壞, Collapse)에 따른 레드팀의 도전장을 받아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레드팀에 의한 전쟁(戰爭, War)과 도발(挑發, Provoke)이 바로 그 증거다. 오냐오냐 내 자식만 귀한줄 알고 온갖 악성민원(惡性民願, Malicious Complaint)을 던지던 진상 부모들이 공교육과 의료시스템을 망치고 그 망친 자식들이 다시 부모가 했던 짓들을 세상에 복제해 저지르는 것을 보면, 가해자와 방종한 타락자를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대가를 세상이 치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삶은 개인전만이 아니라 팀전, 조별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고 불합리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

 

유튜브 보다가 여기까지 또 와버렸는데, 결론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 감언이설로 다가와 나와 세상을 농락하려는 자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직시하고 항상 로고스의 빛을 잃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게 가스라이팅으로 연인이나 배우자를 착취하려는 가해자던,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사상을 세상에 강제로 인스톨(Install)하려는 자던 상관없다. 작게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이지만 크게는 세상을 뒤흔드는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은 가혹한 법이다. 지구(地球, Earth)는 낙원(楽園)이 아니고, 우리는 낙원(Utopia)에 살고있지 않다. 낙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떼를 쓴다고 낙원이 아닌 곳이 갑자기 뿅! 하고 낙원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싫던 좋던 현실은 다가오고 시간은 우리의 사정을 봐가며 흐르지 않는다. 저열한 자들이 남의 사정을 봐가며 피해자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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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러지에게 빼앗긴 프네우마를 되찾자: 고라니 목장

유튜브(Youtube)를 보다보니 안타까운 사연(事緣, Story)의 영상(映像, Video)을 발견했다. 사연인즉, 남자친구가 자신을 때려서 체포(逮捕, Arrest)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사랑하고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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