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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

진급과 졸업의 승급전

한국(韓国, Korea)은 현재(現在) 과도(過度, Overdo)한 교육열(教育熱)과 남자(男子, Man)들에 한해서지만 병역의무(兵役義務, Mandatory Military Service)로 인해 교육(教育, Education)과 취업(就業, Employment)에 긴 시간(時間, Time)을 할애(割愛)해야 함으로서 만혼문화(晩婚文化, Delayed marriage)가 정착(定着)하게 되었다. 취업시장(就業市場)의 등용문(登龍門)은 바늘구멍처럼 좁고, AI와 로봇(Robot)의 발전으로 인해 취업시장 자체가 얼어붙기까지 했다. 어쩌면 2045년이 되었을 때 세상은 역변(激変)해서 아예 취업시장 자체가 붕괴(崩壊)하게 될 수도 있다는 예측(予測)도 있다고 한다. 불안한 시대로 인해 그 누구보다 많은 배움의 기회를 받았던 세대의 젊은이들은 번식본능이라는 DNA적 세뇌에서 벗어나서 자신에게서 태어날,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가 미래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겪을 일들을 시뮬레이션(Simulation) 할 수 있는 지성(知性, Intelligence)을 갖추게 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能力)과 자원(資源)으로는 지금의 환경(環境, Environment)과 세상에 아이를 낳았을 때 자신의 인생에 벌어질 비극(悲劇)을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IMF를 포함해 많은 사회적 불안 속에서 과하게 많은 경쟁자들과 자원과 기회를 놓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경쟁하며 살아와야 했던 이들이 어른이 되고 가임기를 맞이했다. 저출산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지성체(知性体)가 현실을 직시(直視)했을 때 덮어놓고 아이를 낳을리가 없으니 말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유명한 과거의 산아제한정책 문구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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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이유만으로 현재 20대와 30대의 많은 사람들이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경쟁 속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와 사회 그리고 국가에 의해 채찍질을 당해온 세대가 아이를 낳고싶을 이유를 가지는게 더 이상하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그럼에도 아이를 낳은 이들이 더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정말 심사숙고 해서 낳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중에는 태어나서 살아보니 좋았다고 평가해서 아이를 세상에 초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 이 세상에 던져질 누군가의 100년을 깊게 생각하기는 커녕 그저 갖고싶다거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혹은 노후의 수발을 받고싶단 이기적인 이유만으로 이 험한 세상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한 존재를 싸질러 놓기도 한다. 정말 무책임하게도 말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교육을 덜 받지도 않는다. 더 복잡해진 입시정책과 옛날보다 더 불안해진 미래를 어쩔 수 없이 부모에 의해 세상에 내던져졌으니 살아갈 수 밖에 없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안개 속을 방황하듯 그들의 시간을 전부 공부와 입시에 쏟아붓는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이렇게 시험(試験, Test)을 치고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과도한 경쟁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에 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과거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되었던 것이 나중에는 대학교만 나와도 되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아 대학원에도 진학하는 이가 늘었으며, 그것으로는 부족해진 시대가 오자 너도 나도 유학길에 올랐다. 점점 교육에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변별력(辨別力, Discriminability)을 위해서 경쟁자보다 더 높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 자연스럽게 취직은 늦어졌다. 취직이 늦어지니 연애와 결혼이 함께 늦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해버린 이들도 생겨나버렸다.

 

이 비극은 ‘변별력’ 때문에 생겨버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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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의무교육의 필요성에 의심을 가질 수준의 멍청한, 상식 이하의 이야기를 하는 SNS의 게시글을 캡쳐로 보여준 것을 보고 이 위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의 가치는 의심받기 마련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고 가치있다고 하는 것은 역으로 그 누구도 소중하지도 않고 가치있지도 않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건 페이트 제로(Fate Zero)의 에미야 키리츠구의 이야기에서도 나온 말이다.

 

한국의 교육기간이 길어진 것은 어쩌면 변별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의무교육 12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랜덤으로 뺑뺑이를 돌려 들어간다. 일부 특별한 케이스의 학교들과 특목고는 예외적으로 시험을 보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집에서 가까운 곳을 위주로 추첨을 돌려 들어가게 된다. 그냥 학교에 꾸준히 출석하기만 해도 쪽지시험, 수행평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결과에 관계없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유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졸업 역시 그렇다. 이러니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졸업장에 무슨 가치를 느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취업시장에서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변별력을 갖춘 대학에 들어가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럼 역으로, 이 변별력을 되살려주면 현재의 과도한 교육경쟁이나 복잡한 입시제도, 사람들의 피로감과 만혼문화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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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교육제도 속의 변별력이란 건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진짜 간단하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의무교육의 가치를 올려주면 된다. 개나 소나 학교에 다니기만 해도 받을 수 있는 졸업장이 아닌,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 결과가 ‘졸업’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성적이 낙제 수준으로 처참하지 않은 이상 성실하게 출석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졸업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니 진급과 졸업을 그냥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증명한 자에게만 허락하는 것이다. 좀 더 알기쉽게 말하자면 게임 속 레벨업(Level Up)이 아닌 랭크업(Rank Up)의 기준을 진급과 졸업에 적용하면 된다.

 

레벨업과 랭크업은 다르다. 랭크업이라는 것은 보통 대전(対戦, Battle) 게임(Game)에서 나오는 개념인데 레벨업과는 다르다. 쉽게 스플래툰(スプラトゥーン)을 예(例, Example)로 들어보자면, 

 

레벨(Level)은 게임 플레이어(Player) 혹은 유저(User) 그 누구라도 열심히 매칭(Matching)을 넣고 게임을 플레이(Play)하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수치(数値, Value)다. 그러니까 레벨이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이 유저의 절대적인 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1만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어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 한 사람에게 경험과 실력이 쌓여 어느정도 실력에 보정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레벨이 높다고 무조건 실력이 그에 비례해 높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랭크(Rank)는 다르다. 랭크는 플레이 시간과는 전혀 관계없이 순수하게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른 게이머(Gamer)와 랭크전(ランク戦, Rank Battle)을 통해 실력을 겨루는 시스템이다. 상대방에게 승리(勝利, Win)면 랭크가 올라가고, 역으로 상대방에게 패배(敗北, Defeat)하면 랭크가 내려간다. 한번의 승패(勝敗)만으로 랭크가 강등(降等, Relegate)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승리하면 랭크가 올라서 위 랭크로 승급(昇級, Promotion)된다.

 

그리고 이 레벨과 랭크의 시스템을 동시에 지금의 교육에 도입해보는 것이다. 상대평가로 한 학년의 몇%만을 진급시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이것은 기존의 과도한 교육열과 경쟁 시스템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랭크 시스템만을 적용해선 안될 일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진급과 졸업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기준으로 적용한다. 그러나 단지 수업시간에 책상에 앉아있었다는 수준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의 시험이 아니라,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제출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수업에 임하는 태도와 출석률, 과제의 수행률에 레벨 시스템을 적용해서 무자비한 랭크 시스템을 보완해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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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래툰의 랭크는 C, B, A, S, S+로 구분한다. 스플래툰2 시절에는 S+의 단계에서 일정 경지에 다다르면 X랭크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스플래툰3에 들어와서는 X랭크가 폐지되고 대신 X매치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그 속에서도 끝없는 경쟁을 하게끔 시스템을 수정했다.

 

이와 같이 교육 시스템도 각각의 랭크로 구분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 초등학교 : C랭크

● 중학교 : B랭크

● 고등학교 : A랭크

● 대학교 : S랭크

● 대학원 S+랭크

 

스플래툰을 예시로 들어서 임의로 설정해봤다. 더 적절한 다른 비유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편하게 이렇게 구분해보겠다.

 

그리고 각 알파벳 랭크는 -(마이너스), 0, +(플러스)로 랭크 내에서도 3단계로 세분화된다. 그러니까 전체 랭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C-, C, C+, B-, B, B+, A-, A, A+, S, S+로 세분화된다. S랭크 이상에서는 -랭크가 없다. S랭크 이후부터는 그저 무한한 승급전만이 존재할 뿐이고, S+랭크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해당 시즌의 X매치 도전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위의 랭크 시스템처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진급시험과 졸업시험이라는 승급 시스템을 거치는 것이다. 알파벳 내에서의 랭크 업은 진급 시험으로, 알파벳 자체를 바꾸는 랭크 업은 졸업 시험이라는 승급 시험을 거침으로서 모두에게 동일하게 진급과 졸업이라는 자격을 공산주의처럼 나눠줄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사람이 어떤 노력과 성실함이라는 자격을 증명해서 진급과 졸업을 성취해냈다는 것을 공증해준다면 굳이 오랜 시간을 들여 비자발적인 동기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오직 배움을 원하고 갈망하는 자만이 승급전에 도전할 것이니 자연히 대학입시에 따른 부담이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생들과 그 뒤를 힘겹게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의 부담도 자연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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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아이디어는 분명 반발을 살 것이다. 그저 얼굴도장만 찍으면 받을 수 있는 졸업장을 이제와서 노력과 재능을 증명함으로서 차등 지급한다고 하면 분명 누군가는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옆나라 일본은 너무 과도한 교육경쟁이 학생들을 병들게 한다고 유토리(ゆとり) 교육을 실행에 옮겼고, 그에 따라 유토리 교육을 받은 세대는 병약해졌다. 실제로 유토리 교육 세대인 내 일본인 지인은 그 점을 불만스럽게 말하며 자신은 나약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유토리 세대의 나약함을 전부 싸잡아 자신을 그렇게 판단한다며 분노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도 만만찮게 유토리 교육으로 인해 나약해 빠진 일원에 불과하다고 생각될만큼 그는 별 시덥잖은 것에 일일이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유토리 교육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며 분노하지만 그것을 능가할 강인함을 증명하지 못한 채 그저 웅크리고 분노하며 불평만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미국 역시 긍정 강화 교육(Positive Reinforcement)을 도입해 ‘너는 소중해’ 같은 가치를 무조건적인 긍정과 함께 주입하기만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이나 강인함을 빼버린 결과, Strong America라는 부동의 가치는 사라지고 제 기분만 존중해달라 빽빽대고 권리만을 주장한 채 의무는 내팽개치는 사람들이 한 세대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 역시 이 마이너스의 연쇄, 하향평준화(下向平準化, Downward leveling)의 늪에 빠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모두 공멸(共滅)한다.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과도한 입시경쟁에 내몰려 꿈과 희망을 잃고 세상을 지옥으로 정의(定義, Definition)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뭐라도 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침몰하는 배를 그대로 두면 분명 가라앉지만 배의 구멍으로 새어들어오는 물을 막기 위해 합판을 덧대거나 진흙이라도 발라보려 한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야 배가 가라앉을 확률이 더 낮아질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0%지만, 무언가를 시도하기만 해도 확률은 올라간다. 그러나 그 방향이 잘못되면 오히려 0%에서 -로 내려갈 위험성도 있다. 그러니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은 언제나 신중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분명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 멸망의 형이하학적 6대 상수>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류 자체에 남아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생각하면 발버둥을 치던 말던 인류는 필멸의 외길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락해서 아프게 떨어질 것인지, 천천히 하강해서 떨어지더라도 안 다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만 해본것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극약처방이라도 하지 않으면 판을 뒤집을 방법은 전혀 없어보인다고 생각된다. 제노블레이드 크로스에 다시 푹 빠지는 바람에 열심히 게임을 하느라 일주일도 더 전에 일기를 쓰기 시작해놓고 이제와서 이어서 쓰자니 전에 하던 생각이 제대로 휘발되지 않고 남아서 이어졌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만, 그래도 진급과 졸업을 아무에게나 마치 배급하듯 나눠주는 지금의 방식보다는 학생들의 시간을 절약할 파격적인 방법이라도 한번쯤 고민해 보는 것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고민해봤자 쓸데도 없고, 그냥 마비노기 이터니티 굴비 시식회도 부럽고 하니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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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과 졸업의 승급전: 고라니 목장

한국(韓国, Korea)은 현재(現在) 과도(過度, Overdo)한 교육열(教育熱)과 남자(男子, Man)들에 한해서지만 병역의무(兵役義務, Mandatory Military Service)로 인해 교육(教育, Education)과 취업(就業, Employment)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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